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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람속으로

[특별 기고]독자와 함께 계속 신문다운 신문의 길로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
입력 2018-01-26 03:00업데이트 2018-01-26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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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亞 3만호의 의미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
1920년 동아일보가 창간되던 해에 나도 태어났다. 올해 98세를 맞은 동아일보와 평생을 함께해온 셈이다. 내가 8세 즈음인 90년 전. 동네 이장(里長)이었던 외할아버지 집에 우편배달부가 다녀가면 마을에서도 좀 잘사는 집 어른들이 늦은 오후 시간에 모여들곤 했다. 편지를 받아가는 사람도 있고 이장이 읽어주는 신문 소식을 들으러 오는 사람도 있었다. 신문을 통해서 세상 소식을 전해 듣는 것이 뉴스를 접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내 부친도 다녀와서는 동아일보의 보도 내용을 전해주곤 했다.

내가 평양의 숭실중학 3학년 때였다. 우리 학교가 일제 총독부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신사 참배를 거부했다고 해서 숭실학교 교장인 미국인 선교사 윤산온(조지 매쿤·1878∼1941) 박사를 파면시키고 학교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엄청난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으나 철없는 우리들은 그 진실을 알지 못하면서 걱정만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떻게 기숙사 안으로 전해졌는지 동아일보에 크게 기사가 실려 있었다. 평양 3숭(崇)이 폐교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내용이었다. 숭실전문, 숭실중학, 숭의여자중학을 가리키는 기사였다. 상급반이 있는 기숙사 학생들이 앞장서 걱정하기 시작했다. 우리 학생들도 학교를 지키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래서 윤산온 교장이 떠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학교 안까지 들어가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다. 주변이 경찰들에 의해 봉쇄됐기 때문에 같은 캠퍼스에 있는 숭실전문학교 앞까지 가 만세를 불렀다. 경찰과의 충돌도 있었다. ‘독립 만세’를 부르면 학교가 폐교되겠기에 ‘숭실학교 만세’보다도 ‘만세, 만세’를 불렀다. ‘독립 만세’를 대신한 구호였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우리는 신문의 보도를 믿고 따랐다.

그렇게 지나면서 나도 어른이 되었다. 연세대에 있을 때였다. 공화당 말기에 박정희 정권은 일제강점기를 연상케 하는 언론 통제를 감행했다. 그 대상은 신문이었고 동아일보는 그 주 대상이 되었다. 가장 부수가 많았고 정부 비판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그 억압 방법의 하나가 동아일보에 광고를 전면 금지시킨 일이다. 하루가 다르게 동아일보 광고란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기업체 같은 곳에서는 선약했던 광고까지 취소했다.

그때 그 광고를 대신한 것이 언론 자유를 위해 개인들이 보낸 의견 광고들이다. 재정적으로 동아일보를 살리자는 정성에서였다. 나와 같은 문과대에 있던 교수들도 신문에 광고를 보냈다. 박두진 시인은 수입도 많지 못한 편인데 광고란에 올라 있기도 했다.

아아, 그 기간 동안만큼 동아일보가 독자들과 시민들의 사랑을 받은 적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국민들은 신문다운 신문을 사랑하고 있다. 그것이 애국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형극의 길을 헤치고 자란 동아일보가 지령 3만 호를 내놓게 되었고 곧 100주년을 맞게 된다.

지금은 우리 신문들도 언론의 기틀을 굳건히 했고 새로운 지령 4만, 5만의 길을 열어 줄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선진국의 신문들과 같이 200년, 300년의 업적을 쌓아올릴 것을 기대하고 있다.

3만 호를 계기로 동아일보는 독자와 국민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언론을 지켜주기 바란다. 신뢰는 모든 기사가 진실이었을 때 가능해진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가짜뉴스를 진실로 가장하는 일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 집단, 특히 정치 세력들도 있다. 오늘과 같이 진실과 정직이 곧 애국이라는 신념이 진실일 때도 없었던 것 같다.

동아일보가 시련을 겪을 때 독자와 국민들은 동아일보를 진심으로 위하고 사랑했다. 그 사랑을 되찾고 높여가는 노력을 계속해주기 바란다. 독자와 국민들은 어리석은 군중이 아니다. 사랑할 것을 위하고 버릴 것을 멀리하는 상식을 외면할 정도로 비겁하거나 자유와 양심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역사의 장래를 위한 가치관을 상실하고 있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냐고 물었을 때 해답을 주는 지도자나 지도층이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한 세기를 이끌어 온 정신적 과제들을 신뢰와 사랑을 갖고 재창조해주는 언론의 사명을 다해주기 바라는 마음이다.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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