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민병선]스타워즈 에피소드Ⅰ

민병선 국제부 차장 입력 2017-09-08 03:00수정 2017-09-0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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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넷플릭스와 동업한 봉준호 감독. 넷플릭스 제공
민병선 국제부 차장
별들의 은하수 할리우드가 시끄럽다. 소행성들이 우주 질서를 어지럽히는 반란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CBS방송의 인기 드라마 ‘하와이 파이브-오(Hawaii Five-0)’에 출연했던 그레이스 박과 대니얼 대 김이 시즌8을 앞두고 하차했다. 두 사람은 시즌 1∼7에 모두 출연했고 극의 흐름상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는 점에서 의외다. 한국계 미국인인 김은 인기 미드 ‘로스트’에 김윤진과 함께 출연해 한국에도 낯익은 배우. 모델로도 활동한 한국계 캐나다인인 박은 드라마 ‘다크 에인절’을 시작으로 여러 영화에서 인기를 끌었다.

이들은 ‘잘렸다’기보다는 제 발로 나왔다. 함께 출연하는 백인 배우들에 비해 턱없이 적은 출연료에 항의했고, 결국 제작진과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 하차했다. CBS는 백인 남자 배우 스콧 칸과 앨릭스 오로클린보다 10∼15% 적은 출연료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동양계 배우들의 몸값은 백인에 비해 적은 것이 불문율이었다. 두 배우의 하차는 그래서 사건으로 여겨진다. CNN은 “찌질이(nerd)나 닌자 역을 주로 맡던 동양계 배우들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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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은 확전일로에 있다. 김은 지난달 방한 인터뷰에서 본인이 제작한 드라마가 ABC방송을 통해 25일 첫선을 보인다고 밝혔다. 한국 드라마 ‘굿닥터’의 리메이크 작품인 이 드라마는 미국 주요 방송시간대인 오후 10시에 전파를 탈 예정이다. 배우를 넘어 드라마 제작자로서의 큰 꿈을 이룰 날이 머지않았다.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미국 미디어콘텐츠 시장은 지금 태풍 한가운데에 있다. 세계 최대 인터넷 유료 동영상 서비스업체 넷플릭스의 약진 때문이다. 1997년 문을 연 신생기업 넷플릭스는 지난해 콘텐츠 시장 점유율 29%를 기록하며 1위에 올랐다. 기존 강자인 워너브러더스, 20세기폭스, 파라마운트, 유니버설 등 메이저 영화사와 CNN 같은 방송사들을 압도했다. 배우뿐 아니라 제작 쪽에서도 지각이 흔들리자 한 매체는 “미디어산업의 얼음 대륙에 균열(crack)이 생기고 있다”고 표현했다.

넷플릭스는 백인인 리드 헤이스팅스와 마크 랜돌프가 설립한 회사다. 하지만 이 회사에는 일본계인 리사 니시무라 부사장 등 아시안 아메리칸이 요직에 두루 포진해 있다. 엔터테인먼트 매체 버라이어티의 관계자는 “기득권에 얽매이지 않는 넷플릭스의 동양인들이 열린 사고로 콘텐츠 시장을 흔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넷플릭스는 아시아 콘텐츠에 호의적이다. 6월 극장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도 넷플릭스에서 제작비 전액을 투자했다. 넷플릭스의 스트리밍 서비스 콘텐츠에 좀 더 비중을 두고 만들어진 이 영화는 극장용 영화들의 향연인 칸 국제영화제에 경쟁작으로 초대받는 이변을 일으켰다. 봉 감독은 칸에서 “창작자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넷플릭스의 자유로운 분위기 덕분에 행복한 작업이었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백인들(특히 유대인)이 주무르는 기존 미디어기업의 문화는 보수적이다. 2013년 할리우드에 진출해 ‘스토커’를 연출한 박찬욱 감독은 당시 일화를 들려줬다. 박 감독은 촬영을 마치고 투자사인 20세기폭스사의 미국 로스앤젤레스 스튜디오를 찾았다. 이때 자신이 찍은 영화가 난도질당하듯 편집되는 과정을 보고 실망해 잠시 바람을 쐬러 나왔다. 그런데 건너편에 대만 출신 리안 감독이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리 감독은 “내 영화도 사정없이 잘리고 있다”고 했단다. 메이저 영화사들은 ‘색, 계’ ‘와호장룡’ 같은 히트작과 아카데미 감독상 트로피가 2개나 있는 리 감독에게도 최종 편집권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물며 할리우드에 갓 입성한 박 감독은 어떠했겠는가. 창작자들은 돈을 대는 영화사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지만, 자율성을 부여하는 자본이 있다면 그쪽에 더 매력을 느낄 것이다.

봉 감독도 이전 작품 ‘설국열차’의 미국 개봉 과정에서 작품 편집에 간섭한 현지 배급사 와인스타인컴퍼니와 갈등을 겪었다. 넷플릭스를 선택한 데는 이런 경험도 작용했다고 전해진다.

지금 미국은 인종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백인우월주의를 내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부터 그렇다.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미국에 온 청년들을 위한 제도인 ‘불법체류 청년 추방 유예 프로그램(DACA)’을 최근 폐지했다. 얼마 전에는 인종차별주의를 내세웠던 남부연합의 기념물 철거를 둘러싸고 갈등이 극에 달했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보면 각 분야에서 약진하는 유색인종에 대한 백인들의 불안감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기득권을 잃어가는 백인들이 워싱턴 조야의 이단아인 트럼프 대통령을 통해 분노를 표출하고 정치적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격전장인 미디어콘텐츠 산업. 백인우월주의, 시오니즘, 오리엔탈리즘이 콘텐츠 생산자들의 인종과 얽혀 있다. 지금은 특정 인종의 사상과 정치의식을 담은 콘텐츠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철옹성에도 작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투 비 컨티뉴드(to be continued).
 
민병선 국제부 차장 bluedot@donga.com
#넷플릭스#미국 미디어콘텐츠 시장#넷플릭스 아시아 콘텐츠#콘텐츠 생산자의 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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