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종훈]지카 바이러스와 신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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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정책사회부장
이종훈 정책사회부장
지카 바이러스에 대한 국민의 공포심은 과도한 게 맞다. 하지만 지난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나라 전체가 엄청난 충격과 혼란에 빠졌던 걸 생각하면 뭐라고 하기도 힘들다. 공포의 가장 큰 근원은 경험이기 때문이다.

메르스 사태 이후 정부와 병원들은 많은 노력을 한 것 같다. 지난달 본보 기자가 메르스 확산에 큰 책임이 있는 삼성서울병원을 찾았더니 응급실 운영 시스템이 많이 바뀌었다. 정부는 올 초 지카를 4군 법정감염병으로 지정했으며, 지카 발생국을 다녀온 환자가 병원에 오면 자동으로 알려주는 스마트 검역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러나 브라질을 방문한 40대 A 씨가 첫 국내 지카 감염자로 확정된 22일부터 과거의 나쁜 습관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날 오전 정기석 질병관리본부장은 “A 씨가 병원을 처음 방문한 18일 발열과 근육통이 있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언론이 “발열과 근육통이 있고 브라질 방문 경력이 있으면 의사가 24시간 내 신고를 해야 하는 지침을 어긴 것 아니냐”고 계속 묻자 질병관리본부는 오후에 “18일에는 발열만 있었다”며 통증 부분을 뺐다. 발열이나 근육통 중 한 가지가 없으면 의무 신고 대상이 아니므로 문제가 없다는 말로 들렸다.

질본이 두 시간 만에 말을 바꾼 이유는 둘 중 하나일 거다. 첫 지카 환자의 초진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없이 브리핑을 했다가 다시 알아보니 사실과 달랐거나, 아니면 의사의 초동 대응 및 질본의 신고지침 운영에 문제가 없었음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느 쪽이 맞든지 모두 문제다. 국민의 관심이 쏠린 브리핑을 하면서 중요한 팩트 확인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것도 잘못이고, 신고지침의 정책적 의미를 정확히 모르는 소통 방식도 문제이기 때문이다.

A 씨를 진단한 의사가 처음에는 “환자가 첫날 근육통이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는데 질본이 다시 물으니 “그때 환자가 근육통 얘기는 안 한 것 같다”고 말을 바꿨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날 저녁 본보 기자와 만난 그 의사는 “첫 내원 때부터 발열과 미세한 근육통, 구역질이 있었다”라고 솔직히 답했다. 질본이 늑장 신고 논란을 의식해 근육통 증상을 축소하려 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신고지침은 신고의 방법이나 방향을 인도하는 일종의 준칙일 뿐이다. 당국은 이를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국민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질병에 관한 것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래야 의사들이 환자에게 근육통이나 발열 중 한 가지 증세가 없더라도 브라질에 갔다 온 환자라면 신고를 할 것 아닌가. 이건 과도한 공포를 조장하는 게 아니라 당국의 책임 있는 자세와 신뢰에 관한 문제다.

정 본부장은 “해당 의사가 왜 신고를 하지 않았는지 알아보겠다”고 했다. 이 말은 ‘지침 위반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하지만 질본은 “단순히 신고를 하지 않은 이유를 알아보겠다는 것이다. 신고는 의사 재량에 맡겨야 한다”라고 말을 비틀었다. “신고를 안 한 이유를 알아보겠다”는 말과 “지침 위반 여부를 검토한다”는 말이 뭐가 다른가. 신고를 의사의 재량에 맡기기 때문에 질본의 판단이 더 중요한 것이다. 정확한 해석을 해줘야 다음부터 의사들이 헷갈리지 않을 것 아닌가.

메르스 공포는 정부의 근시안적이고, 아마추어 같은 정책 소통 때문에 빚어진 측면이 크다. 그 공포의 핵심은 ‘불신’이었다. 메르스 사태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뛰어난 의학 기술과 방역 시스템도 무용지물임을 보여줬다. 지카에 대한 정부의 대응과 국민 소통은 더 할 수 없이 투명하고, 적극적이어야 한다. 잘못이나 실수는 솔직히 인정하고 바로잡으면 된다. 그게 용기 있는 행동이다.
 
이종훈 정책사회부장 taylor55@donga.com
#지카 바이러스#메르스#질병관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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