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박 대통령, 남북통일 막은 中 인민군에 박수 칠 순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1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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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어제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 여부에 대해 “제반 사항을 고려해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에서 전승절은 일본이 1945년 미주리함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한 다음 날인 9월 3일로 ‘항일전쟁 승리기념일’로도 불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날 남북한을 포함한 50여 개국의 지도자를 초청해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열리는 대대적인 열병식을 참관시킬 계획이다. 그제 일본 교도통신이 “미국은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박 대통령이 참석하지 말 것을 외교 경로를 통해 한국 정부에 요구했다”고 보도한 데 대해 곧바로 미국과 한국의 외교 당국이 부인했지만 다음 날 청와대가 참석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한국과 중국이 일본 군국주의의 피해국이기는 하지만 박 대통령이 흔쾌히 참석할 자리는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과 맞서 싸운 중국군은 주로 현재 대만에 있는 국민당 정부군이었다. 중국 공산당의 지휘를 받은 인민해방군은 6·25전쟁 때 북한을 위해 기습적으로 참전해 우리의 남북통일을 좌절시킨 적군이다. 시진핑 주석은 2010년 10월 25일 중국군의 6·25전쟁 참전 60주년을 맞아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은 평화를 지키기 위한 위대한 전쟁이자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6·25전쟁을 미국에 대항하고 북한을 도왔다는 의미로 항미원조 전쟁이라고 명명했다. 이런 군대의 열병식에서 박 대통령이 박수 칠 수는 없는 일이다.

시진핑 주석은 이번 행사를 중국의 국제적 영향력과 군사력을 과시하는 기회로 여기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패권 확대를 위한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보고 참석하지 않을 방침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앞뒤 가리지 않고 행사에 참석할 경우 미국 일본과의 관계를 손상시킬 우려가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러시아가 올해 5월 9일 개최한 제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식을 앞두고 비슷한 고민을 했다. 메르켈은 전승 퍼레이드가 열린 다음 날 모스크바를 방문해 무명용사 묘에 헌화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박 대통령도 열병식은 피하되 중국과 공유하는 근현대사를 기억하는 행사 참석을 검토할 만하다. 국제관계에서 국익을 극대화하려면 ‘창조 외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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