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안병준]전문직업주의가 필요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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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된 지식, 기술, 경험 발휘… 사회 문제 해결하는 전문가들
때로는 권력자에게 불편한 진실도 말할수 있어야
전문직업인의 책임-윤리의식… 존중하고 실천해야
‘제2 메르스’ 혼란 막는다

안병준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안병준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오늘날은 인간의 영혼을 시험하는 어려운 시기이다.”

이 명언은 1776년 미국이 영국을 상대로 한 독립전쟁에서 전세가 불리하게 기울어졌을 때 독립군의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토머스 페인이 쓴 글에 들어 있는 말이다. 여기서 그는 전쟁이 잘나갈 때에 종군했던 ‘햇빛 애국자’는 국가를 위한 봉사에서 결국 사라질 것이고 승리를 위해 격렬한 투쟁과 희생을 견뎌 낸 직업군인들은 미국 국민의 사랑과 감사를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독립군사령관 조지 워싱턴 장군은 이에 깊은 감동을 받아 모든 장병들이 이 글을 읽도록 명령해 마침내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한다.

점차 위세가 꺾이고 있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되돌아볼 때 비슷한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문직업주의(프로페셔널리즘)를 존중하고 전문 인력을 효과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프로페셔널리즘이란 국가와 사회가 직면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검증된 지식과 기술, 경험, 능력을 발휘하는 전문가 정신을 의미한다.

2001년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9·11테러 당시를 떠올려 보자. 그때 그 엄청난 재난을 직접 관리하는 일은 소방관들과 경찰이 수행했다. 로버트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현장에서 모든 자원을 즉각 동원하는 실로 단호한 지도력을 보였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그 현장에서 기자들이 한 소방관에게 저 위험을 감수할 것이냐고 물었다. 그 소방관은 ‘당신이 내 직업을 맡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되묻고 나서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살아 돌아오지 못한 것으로 보도됐다. 한국에서도 메르스 방역을 위해 자신의 직업을 천직으로 알고 자신을 희생하면서 열심히 임무를 완수한 의사와 간호사 등 공공 및 민간 의료진과 군인, 경찰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우리들이 안전할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전문직업인은 무엇보다도 권력자들에게 진실을 말해야 한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필자는 지난해 5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렸던 국제학술원위원회(IAP)에 참석했을 때 다시 한번 실감했다. 세계 각국의 학술원들로 구성된 IAP는 이탈리아 학술원 건물에서 진행됐다. 학술원 건물에 들어섰을 때 필자는 벽에 설치된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흉상을 목격했다. 흉상을 쳐다보면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17세기로서는 이단에 해당하는 지동설을 피력하다가 유죄 선고를 받았지만 그래도 지구는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한 갈릴레이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특히 이 회의에서는 노벨상을 받은 폴 너스 경이 현재 우리가 직면한 위기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해 주었다. 너스 경은 2001년 생리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았고 그 직후에 영국학술원 회장으로 일했다. 너스 경은 회의에서 과학과 사회를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그는 지진과 전염병 등을 방지하는 데 기존에 알려진 지식은 아직 불확실한데도 정치인들은 단순하고 명확한 답을 원하기 때문에 그들의 자문에 응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너스 경은 그렇지만 과학자들은 그들이 이미 검증하고 합의를 이룬 견해를 정책 당국에 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자는 검증과 합의를 이룰 수 없는 돌발적인 재난이 발생했을 때 과학자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너스 경은 그래도 전문가는 권력자에게 진실을 전달해야 하며 만약 잘 알지 못한다면 모른다고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대한민국에서도 이러한 의미의 프로페셔널리즘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얼치기 전문가나 검증되지 않은 사실들을 쏟아내는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 메르스처럼 잘 알지 못하는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와 같은 위기에서 당국은 의료 전문가들에게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필요한 지원을 적소에 동원할 수 있는 임기응변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질병 감염 방지와 같은 공공재를 달성하기 위해 현 단계에서 파악되는 최선의 정보를 제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책임 있는 행동으로 서로 협력할 때 가장 중요한 국민 보건이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안병준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전문직업주의#권력자#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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