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에서 ‘천송이’ 효과 톡톡… 유쾌하며 진지한 디자이너 캐릭터 닮았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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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매거진]‘Fay’ 남성 듀오 디자이너

이탈리아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열린 페이의 2015 FW 컬렉션. 젊고 우아하고 세련된 여성의 이미지를 다양한 소재로 표현했다. 토마소 아퀼라노 씨는 “소재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야말로 이탈리아 패션의 원천”이라고 설명했다. 페이 제공
이탈리아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열린 페이의 2015 FW 컬렉션. 젊고 우아하고 세련된 여성의 이미지를 다양한 소재로 표현했다. 토마소 아퀼라노 씨는 “소재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야말로 이탈리아 패션의 원천”이라고 설명했다. 페이 제공
양 갈래로 땋은 머리와 만화영화 캐릭터인 ‘스누피’가 그려진 톱.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천송이가 선보인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페이(Fay)’ 스타일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어려보이고자 스누피 톱을 입은 드라마 속 그녀의 의도대로 페이는 젊고 발랄한 패션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최근 서울 중구 소공로 신세계 본점에서 ‘페이’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토마소 아퀼라노와 로베르토 리몬디 듀오를 만났다. 막 일본 도쿄에서 론칭 기념한 패션쇼를 마치고 온 그들이 보여주는 페이의 모습은 천송이의 이미지와는 달랐다. 페이의 회색 스웨터에 화이트 팬츠를 매치한 심플한 패션이었다.

‘스누피와 친구들 캐릭터 옷을 입고 올 줄 알았다’고 묻자 아퀼라노 씨가 웃으며 말했다.

“저희는 지루한 사람들이어서요.”

그러면서 자신의 강아지가 세살 생일이 됐다며 사진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지루하다는 그의 말은 ‘반어법’이었다. 디자이너들의 캐릭터가 유쾌함 그 자체였다. 디자인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하다가 갑자기 ‘한국어와 일본어는 어떻게 다르냐’고 묻기도 하고, 옆에 전시된 화장품과 얽힌 에피소드로 넘어가기도 했다.

최근 방한한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페이’의 듀오 디자이너 로베르토 리몬디 씨(위)와 토마소 아퀼라노 씨.
최근 방한한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페이’의 듀오 디자이너 로베르토 리몬디 씨(위)와 토마소 아퀼라노 씨.
토즈 그룹의 40년 브랜드 ‘페이’

우리에게는 드라마 속 천송이 패션으로 강렬하게 다가왔던 페이. 실은 1970년대 말 이탈리아 토즈 그룹에서 인수한 브랜드로 역사가 깊다. 미국 소방관들이 주로 입던 네 개 버튼(포 버튼) 코트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된 브랜드로 실용성과 우아함을 동시에 추구하는 브랜드로 알려졌다. 특히 1980년대 나일론과 코듀로이 코튼 소재에 4개의 메탈 후크가 달린 ‘4후크’ 남성용 재킷이 인기를 얻으면서 ‘메탈 후크’는 페이를 상징하는 아이템이 됐다.

실용성과 우아함, 도시적인 것과 아웃도어 라이프가 뒤섞여 있기에 페이가 표방하는 디자인 철학은 ‘더블 라이프(Double life·이중적인 삶)’로 표현된다.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듀오 디자이너가 ‘피너츠(스누피 만화)’와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한 것도 나름의 철학이 들어 있었다.

“만화영화와 하이패션의 컬래버레이션이 트렌드가 되기도 했었고, 무엇보다 피너츠 가족이 보여주는 가치관이 현대사회와 잘 맞는다고 느꼈어요. 스누피는 이상주의에서 벗어나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루시는 독립적인 여성상을 보여주죠. 사회가 달라지면서 변화하는 소비자들이 공감만 한 캐릭터들입니다.”

페이는 2014년 봄·여름에는 스누피, 가을·겨울에는 우드스톡(노란색 새 캐릭터), 올해 봄· 여름에는 루시를 디자인에 반영해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페이의 컬렉션에서 피너츠 컬래버레이션 디자인은 일부분일 뿐이다. 가벼운 나일론 소재의 재킷, 구김이 덜 가는 트렌치코트와 오피스룩과 캐주얼룩을 오고가는 다양한 디자인이 더 많다.

아퀼라노 씨는 “한 공간을 둘러싼 벽을 조금씩 밀어내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페이의 캐주얼하고 활동적인 디자인 위에 세계적인 트렌드와 호흡하며 조금씩 ‘알파’를 추가하고 있어요. ‘좋은 소재에 대한 연구’라는 이탈리아 스타일도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고요.”

페이는 최근 일본 론칭을 기념해 도쿄에서 올가을겨울 남녀 컬렉션과 가부키쇼를 함께 선보였다. 페이 제공
페이는 최근 일본 론칭을 기념해 도쿄에서 올가을겨울 남녀 컬렉션과 가부키쇼를 함께 선보였다. 페이 제공
17년 듀오 디자이너, 세계 꿈꾸다

아퀼라노와 리몬디 씨는 명함은 함께 쓴다. 한 장의 명함에 두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다. 1990년대 말 ‘막스마라’의 디자이너로 만나 듀오로 활동하며 2005년 보그 이탈리아에서 후원하는 ‘후즈 온 넥스트(Who’s on next)에 출연하며 패션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9년 자신들의 컬렉션인 ‘아퀼라노.리몬디’를 론칭한 이후 2012년 페이의 2012 봄·여름 시즌부터 디자이너로 합류했다.

17년을 함께 일했으면 ‘부부’나 다름없겠다는 기자의 말에 ‘경악’하며 웃던 이들은 이내 진지하게 “리몬디가 기술적인 부분, 즉 꼼꼼하게 원단과 패턴에 집중한다면 아퀼라노는 즉흥적인 감성을 불어넣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에 아퀼라노 씨는 “리몬디는 독일사람인 셈이다. 기술에 신경을 쓴다”며 농담을 던졌다.

유쾌한 듀오 디자이너의 등장으로 글로벌 시장 진출에 날개를 단 페이는 올해 일본을 시작으로 내년에는 중국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페이의 본사 PR 담당자는 “아시아에서 인기가 높은 드라마(별에서 온 그대) 덕분에 좀더 대중적으로 페이가 중국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서울은 도쿄나 상하이보다 한발 앞서 지난해 신세계 본점에 단독매장을 열었다. 디자이너들은 “같은 공연을 봐도 어떤 관객은 무심코 보고, 또 다른 관객은 ‘전류’를 느낀다”며 “신세계와 우리가 그랬던 것 같다. 신세계에서 발 빠르게 한국 진출을 권유해왔다. 단독매장을 보면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국 소비자들이 페이의 세계를 체험하며 이렇게 느꼈으면 좋겠어요. 유행에 따라 입고 버리는 옷이 아니라 자기 이미지와 정체성을 지키면서 새로운 무언가를 추가해 갈 수 있는 브랜드라고.”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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