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단순하면서도 조금은 특별한… 살짝 멋을 낸 영국 신사의 아우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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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폴 스미스’에 끌리는가

폴 스미스는 ‘영국다움’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패션 브랜드 중 하나다. 클래식에 위트를 가미한 독특한 감각이 멋스러운 스타일을 추구하는 전 세계 팬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다. 폴 스미스 제공
폴 스미스는 ‘영국다움’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패션 브랜드 중 하나다. 클래식에 위트를 가미한 독특한 감각이 멋스러운 스타일을 추구하는 전 세계 팬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다. 폴 스미스 제공
“나이키가 좋아? 아니면 아디다스?”

한때 또래 사내들 사이에선 이런 질문이 유행이었다. 한 카테고리 안에 있는 대표적인 제품이나 브랜드 중 어느 것을 더 선호하는지 묻는 것이었다. 비슷한 질문으로 ‘빈폴 대 헤지스’(캐주얼 의류) ‘몽블랑 대 라미’(만년필) ‘노스페이스 대 컬럼비아’(아웃도어), ‘미국 대 영국’(국가) 등이 있었다.

무엇을 고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이나 가치관을 가늠할 수 있다고 여겼던 걸까. 우리는 대학 신입생 환영회나 소개팅, 낯선 이와의 술자리 등에서 대화거리가 바닥났을 때 종종 이런 질문을 하곤 했다.

물론 이는 순전히 개인적인 추측일 뿐이다. 선호하는 브랜드나 제품 한두 개를 안다고 해서 어찌 한 사람의 성격이나 가치관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우리는 그 ‘한정된 정보’가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고 굳게 믿곤 했다.

게다가 나와 비슷한 선택을 하는 이에게 좀 더 깊은 호감을 느꼈음은 물론이다. 기자처럼 나이키보다는 아디다스를, 빈폴 대신 헤지스를, 그리고 라미와 컬럼비아, 영국을 골랐던 이들에게 말이다.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뒤쪽의 것들이 조금 더 마니아적인 분위기를 풍긴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대중적인 취향을 찾는 이들보다는 나만의 특별함을 즐기는 이들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인상은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Life on Mars)’를 보면 더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강력계 형사가 우연히 교통사고를 당한 뒤 눈을 뜨니 마치 영화 ‘백 투 더 퓨처’처럼 1973년으로 돌아가 있다. 이런 황당한 상황에서 그가 겪는 에피소드가 주된 줄거리다. 2008년 영국 BBC에서 처음 방영한 데 이어 같은 해 미국에서도 이 드라마를 리메이크했다.

영국 드라마를 보며 열광했던 기자는 리메이크된 작품도 챙겨 봤으나 1회를 보다 바로 접고 말았다. 이유는 영국과 미국 제작자들이 드라마를 대하는 관점의 차이 때문이었다.

주인공의 고뇌와 화면을 가득 채운 1970년대의 추억, 그리고 당시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음악으로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던 영국판과 달리 리메이크 작품은 명확한 선악 구도를 드러내는 데에 집중했다. 게다가 화려한 화면 편집이나 속도감 있는 추격전은 드라마를 보는 내내 불편한 감정이 들게 했다.

조금 멀리 돌아왔지만 ‘폴 스미스’는 이처럼 기자에게 영국에서 방영한 라이프 온 마스 같은 느낌을 주는 브랜드다. 대중적인 감수성을 추구하지 않으면서도 조금은 특별한 인상을 전해주는 브랜드란 얘기다.

다시 말해 클래식하면서도 독특한, 이를테면 과하지 않게 살짝 멋을 낸 영국 신사를 대할 때의 느낌이랄까. 실제 폴 스미스 브랜드를 만든 디자이너 폴 스미스는 과거 인터뷰에서 “내 작업은 항상 영국적인 것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고 말한 바 있다.

처음 폴 스미스를 접한 때는 2000년대 후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적지 않은 남성들이 그렇듯이 기자도 친구에게 선물을 받으면서 이 브랜드를 알게 됐다. 당시 선물 받았던 목도리는 폴 스미스 특유의 스트라이프 패턴으로 짠 것이었다. 남성들이 두르는 목도리가 대개 단색 일변도인 것과 다르다는 점에서 어느새 그 목도리는 기자의 애장품으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시작한 폴 스미스와의 인연은 지갑, 벨트, 시계 등으로 이어졌다. 해외에 나갈 때면 면세점에 들러 새로운 제품을 둘러보는 게 일상이 됐고 영국에 갈 때면 꼭 폴 스미스 매장을 찾곤 한다.

물론 폴 스미스의 모든 아이템을 소화할 수 없다는 것을 기자도 잘 안다. 하지만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구매가 아닌 나를 위한 ‘작은 사치’를 바라는 이들에게 폴 스미스는 꽤 괜찮은 브랜드가 아닐까.

특히 단정함 속에 특별함을 감춘, 그리고 다소 덜 대중적이더라도 충분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무언가를 찾는다면 말이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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