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현진]2014 경제키워드? 유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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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 소비자경제부 차장
박현진 소비자경제부 차장
최근 만난 아모레퍼시픽 관계자의 관심은 면세점 계산대에 늘어선 유커(遊客), 즉 중국인 관광객들의 줄을 빨리 줄이는 것이었다. 계산대에서 신용카드를 받아 카드리더기에 긋고 서명하기까지 길게는 몇십 초가 걸린다. 중국 관광객들이 워낙 몰리다 보니 ‘카드를 긋는’ 시간조차 아깝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내 면세점과 주요 백화점, 화장품 업체 등은 알리바바가 개발한 ‘알리페이’와 같은 전자결제 시스템이 서둘러 한국에서도 대중화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스마트폰만 갖다대면 수초 만에 결제가 이뤄지는 시스템이다. 더 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려는 고민의 깊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14년 한국 경제를 총결산하는 키워드는 여러 가지를 댈 수 있다. 삼성전자로 대표되는 한국 수출기업의 부진이 대표적일 것이다. 경기가 장기침체의 초입에 들어섰다는 분석과 긴축모드로 접어든 기업들로 세밑 풍경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이런 와중에 표정관리를 하는 기업들은 하나같이 중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닿았던 곳이다. 면세점은 올해 사상 최대의 매출을 올렸다. 화장품 및 레저기업 관광업체 등의 주가도 ‘유커 수혜주’로 불리며 강세를 보였다. 올해 들어 10월 말까지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562만278명으로 처음으로 500만 명을 넘어섰다. 중국인 한 명은 평균 1738달러(약 190만 원)를 쓰고 갔다. 청계광장 광화문광장 명동거리 등 서울의 명소와 유통가를 점령한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한국 소비자들이 역차별당한다는 비판까지 내놓았다. 하지만 한국 경제가 그나마 최악의 내수부진으로까지 치닫지 않은 것은 이들 덕분인지도 모른다. ‘2014년 한국 경제’의 키워드 가운데 하나로 당당히 ‘유커’를 꼽을 수 있는 이유다.

언제까지 중국인 관광객의 한국 방문 러시가 이어질지가 궁금해졌다. 정부는 평창 겨울올림픽이 열리는 2018년까지 전망치만을 내놓았다. 증가세가 지속돼 2018년에 10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해 30조 원을 소비해 지난해 국내 소매판매의 10%에 이르는 돈을 쓰고 갈 것이라는 증권사 보고서까지 나왔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장밋빛 전망이다. 일본인 관광객이 엔화 약세로 갑작스럽게 줄어든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거시경제 지표 등 중국인 관광객이 발길을 돌릴 수 있는 변수는 언제든 불거질 수 있다.

기회는 주어졌을 때 잡아야 한다. 최근의 중국인 관광객 특수는 제조업 기반에서 성장해온 한국 경제가 외국인 관광객과 연계된 유통 의료 관광 등의 서비스 산업에서 충분히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부족한 호텔의 확충, 전시회와 연계된 관광객 유치 전략인 마이스(MICE·기업회의, 포상관광, 컨벤션, 전시회) 산업 육성 등 서비스 산업 활성화를 위해 산적한 과제를 풀 수 있는 더없는 시간이 될 수 있다.

공교롭게도 중국인 관광객 방문이 최고 절정을 맞을 것으로 예상되는 2018년부터 한국의 생산가능인구가 줄기 시작할 것으로 통계청 등은 내다보고 있다. 한국 경제의 변곡점이 될 수도 있을 그해까지 서비스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키울 수 있는 싹은 틔워놓아야 한다. 중국인 관광객 특수를 한국 경제의 체질을 튼튼하게 할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면 과장일까. 이는 2018년 새롭게 들어설 차기 정부에 현 정부가 남겨줄 몇 안 되는 귀중한 선물이 될 수도 있다.

박현진 소비자경제부 차장 witness@donga.com
#유커#중국인 관광객#경제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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