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메트로 이슈]‘위험한 벌집’ 고시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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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56%가 2009년 7월 이전 지어… 소방시설 의무화 안돼 화재땐 참사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고시원 내부 모습. 6㎡ 남짓한 방 안에 이불, 옷, 가전제품 등이 어지럽게 놓여 있고 바닥에는 전기장판이 깔려 있어 화재 발생 시 큰 피해가 우려된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고시원 내부 모습. 6㎡ 남짓한 방 안에 이불, 옷, 가전제품 등이 어지럽게 놓여 있고 바닥에는 전기장판이 깔려 있어 화재 발생 시 큰 피해가 우려된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고시원. 좁은 복도 벽에 발린 벽지는 오래돼 너덜너덜했고, 화재감지기도 벽에서 뜯긴 상태였다. 6m² 남짓한 방 안에는 이불, TV, 침대, 옷 등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고 바닥에는 전기장판이 깔려 있었다. 통로는 좁고 구조가 미로처럼 돼 있어 화재가 났을 때 대피하기가 어려워 보였다. 입주민 김모 씨(20)는 “사고의 위험은 느끼지만 돈이 없어 이곳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고시원 둘 중 한 곳은 화재에 무방비

지난달 서울 중구 청계천로 수표교 앞 공구상가 건물에서 불이 나 2명이 숨지면서 열악한 주거시설 관리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고시원의 경우 상당수가 소방·방재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 고시원에 사는 사람은 서울시내에만 14만여 명인 것으로 추산된다.

2008년 10월 서울 강남구 논현동 고시원 화재사고 이후 2009년 7월 건축법이 개정돼 복도 폭을 1.5m 이상으로 하고 스프링클러 등 소방안전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문제는 여전하다. 2009년 7월 이전에 지어진 고시원에 대해선 개정 법률이 소급 적용되지 않아 사실상 무방비 상태다. 관할 소방서와 자치구에서 6개월에 한 번씩 소방 점검을 하지만 소방시설 설치를 강제할 법적 근거도 없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2년 말 현재 서울시내 고시원 6157곳 가운데 56.5%인 3481곳이 2009년 7월 이전에 지어졌다. 서울시는 고시원 운영자들과 협약을 맺고 노후 고시원에 대한 안전시설 설치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지난해 말까지 완료된 곳은 65곳에 그쳤다.

관악구 신림동의 한 고시원 업주는 “화재 위험이 있는 건 맞지만 안전시설 설치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며 “소방서에서 지적해도 권고 수준이어서 꼭 따를 필요는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고시원은 ‘자유업’…관리 사각지대


고시원이 당국의 관리감독에서 벗어나 있는 이유는 ‘자유업’으로 분류돼 있기 때문이다. 관할 구청의 확인 없이 세무서에 사업자등록을 내고 소방 관련 시설을 설치한 뒤 필증을 받으면 개업할 수 있다. 숙박시설도, 교육시설도 아니어서 관할 구청에서 관리하기가 어렵다.

고시원이 다른 용도로 변질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최근에는 저소득층이 임대주택을 얻기 위해 거쳐가는 통로로 이용되고 있다. ‘거리·고시원·시설 거주 등 주거취약 상태를 3개월 이상 겪고 소득기준(전년도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의 50%, 3인 이하 가구의 경우 230만 원)을 충족하면 주소지 관할 주민센터를 통해 매입임대주택이나 전세임대주택 입주 신청을 할 수 있다’는 기준을 악용하고 있는 것.

특히 상대적으로 복지 혜택이 많은 서울로 주소지를 옮기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 김모 씨(73)는 “경기 고양시에 살다가 서울 서초구 방배동 고시원으로 주민등록을 옮긴 뒤 지난해 9월 전세임대주택에 입주했다”며 “아무래도 강남 쪽이 돈이 많아 복지 혜택이 많을 것 같아 옮겨왔다”고 말했다.

고시원을 개조해 외국인 대상 게스트하우스로 불법 운영하는 사례도 있다. 이런 업소를 이용한 외국인 관광객은 숙박예약 사이트에 ‘호텔인 줄 알았는데 방이 너무 작고 더러웠다’ ‘창문이 없어 갑갑했다’ 등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이에 따라 고시원 용도를 ‘자유업’에서 ‘신고제’로 변경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고제로 바꾸면 영업허가를 받기 전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 사후에도 철저한 관리 감독이 가능하다.

진익철 서초구청장은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그와 관련된 수많은 징후가 나타난다. 2009년 7월 이전에 지은 고시원에 대해 최소한의 안전시설을 갖출 수 있도록 특별조치법을 마련해 달라고 건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박우인 인턴기자 고려대 사학과 4학년
#고시원#소방시설#화재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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