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은행으로 옮긴 건 지난해. 3년 전부터 건강이 좋지 못했다. 마음도 지쳤다. 실적이 곤두박질쳤다. 남 씨는 “회사는 살아날 때까지 기다려 주겠다고 했지만 나 자신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며 “회사에 해가 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남 씨는 동료들 몰래 상사를 찾아 사직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상사는 새 일자리를 찾아보면 어떻겠느냐며 자리를 주선했다. 남 씨는 회사를 옮기면서 “정답 없는 문제는 없다”는 말을 되새겼다. 그 말이 힘을 발휘한 걸까. 남 씨는 올해 3년 만에 다시 자기 분야 1위 자리를 되찾았다.

남 씨의 취미는 만화 보기.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는 배구 만화 ‘리베로 혁명’이다. 그는 그만큼 ‘완벽한 리베로’를 꿈꾸며 살았다. 그러나 2010∼2011 시즌을 앞두고 고관절 부상이 찾아왔다. 리베로로서의 삶이 끝날 것만 같았다.
남 씨는 “그렇게 바닥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잘했을 때를 떠올려 보려 아무리 애써도 몸이 안 따라줬다”며 “요즘도 통증이 남아 있어 경기 전날 진통제를 꼭 먹는다. 그런데 약보다는 마음가짐이 더 도움이 됐다. 예전에는 병을 이기려 들었다면 이제는 병을 다스리며 병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운 것 같다”며 웃었다.
남 씨는 이날 수비상을 탔다. 이 상만으로 기자단 투표(전체 27표)를 통해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기업은행 동료 알레시아(11표)나 신인상을 탄 GS칼텍스 후배 이소영(26표)보다 눈에 띄는 존재가 되기는 힘들다. 남자부 MVP 레오(22표·삼성화재), 신인상 양준식(19표·KEPCO)과 비교하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운동선수도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걸 잊는다. 그래서 사소한 실수 하나에 ‘저건 선수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 최고의 회사원, 학생, 주부가 될 수는 없는 법. 적어도 남 씨는 자기 분야에서 국내 최고다. 그런 의미에서 남 씨야말로 눈에 띄지 않아도 묵묵히 제 몫을 다하며 사는 우리 보통 사람들에게 ‘희망의 증거’라 할 것이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