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권력 사면 정면충돌]‘물과 기름’의 6년… MB-朴당선인 ‘4차 충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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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 40여일만에 불거진 갈등, 과거 ‘감정의 골’ 얼마나 깊기에…

이명박 대통령이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미래기획위원회 오찬에서 곽승준 위원장의 인사말을 들으면서 생각에 잠겨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연일 제동을 걸고 있지만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특사는 대통령 고유 권한”이라며 특별 사면 강행 방침을 분명히 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명박 대통령이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미래기획위원회 오찬에서 곽승준 위원장의 인사말을 들으면서 생각에 잠겨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연일 제동을 걸고 있지만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특사는 대통령 고유 권한”이라며 특별 사면 강행 방침을 분명히 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해 12월 29일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박근혜 당선인과의 단독 회동에서 “(당선인께서 요청한 예산은) 모두 반영하도록 협조하겠다”며 전폭적 지원을 약속했다. 박 당선인은 ‘조용한 인수위’로 화답했다. 이 대통령의 택시법 국회 재의결 요구, 4대강 사업 부실 논란 등 민감한 현안에도 박 당선인은 침묵했다. 이 대통령의 임기를 마지막까지 존중하겠다는 의미였다. 이 때문에 정권교체기마다 신구 권력이 맞부딪쳤던 전례를 깨고 어느 때보다 조용한 권력이양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대선 40여 일 만에 이 대통령의 특별사면 강행 방침이 해묵은 갈등에 불을 지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갈등을 두고 ‘4차 충돌’이란 말이 나온다. 2007년 대선 경선(1차 충돌)을 시작으로 2008년 총선 공천파동(2차 충돌), 2010년 세종시 수정안 충돌(3차 충돌)에 이은 네 번째 전면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두 사람 간 감정의 골은 그만큼 깊고 넓다.

2007년 5월 대선 경선 룰 갈등에서 박 당선인은 “원칙을 너덜너덜한 걸레처럼 만들어놓으면 누가 지키겠느냐”며 격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 대통령 측은 “공주 같은 발상”이라며 박 당선인을 자극했다.

두 사람은 대선 경선 당시 여론조사 문항을 두고도 격돌했다. 당시 친박(친박근혜) 진영에서는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한국갤럽 회장의 경력을 이용해 여론조사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박 당선인이 지난해 최 전 위원장의 구속을 두고 “법대로 해야 한다”며 쐐기를 박은 것도 이런 구원(舊怨) 탓이란 말이 나왔다.

박 당선인이 경선 패배를 승복하고 이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지원하면서 두 사람은 해빙기를 맞은 듯했다. 그해 12월 29일 두 사람은 전격적으로 만났다. 하지만 비공개 회동에서 총선 공천 시기를 논의했는지를 놓고 서로 말이 달랐다. 이는 2008년 4·9총선 ‘공천 파동’의 전초전이었다.

공천 결과가 발표되자 박 당선인은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공천 결과에 불복해 탈당한 친박 진영 후보들에겐 “살아 돌아오라”며 지지를 보냈다. 박 당선인은 “선거운동에 나서 달라”는 당 지도부의 요청을 뿌리친 채 총선 내내 지역구에 머물렀다.

이후 박 당선인은 긴 침묵에 들어갔다. 국정 현안에 자신의 의견을 내는 것 자체가 이 대통령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2009년 8월 박 당선인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유럽을 방문해 달라’는 이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한 달 뒤 정운찬 국무총리의 기용과 함께 세종시 수정안이 정국의 핵으로 등장하면서 관계는 다시 틀어졌다. 2010년 6월 29일 박 당선인은 의정생활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의원 자격으로 국회 본회의 단상에 섰다. 세종시 수정안 찬반표결을 앞두고 반대토론에 나선 박 당선인은 “정치가 미래로 가려면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박 당선인은 ‘약속과 신뢰’라는 정치적 자산을 얻었지만 이 대통령은 국정 동력을 잃었다.

파국으로 치닫는 듯했던 두 사람은 그해 8월 21일 전격적으로 회동하면서 정권 재창출에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회동은 당시 홍상표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조차 “낌새만 알았다”고 말할 정도로 비밀리에 이뤄졌다.

이후 2011년 12월 박 당선인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당의 전면에 나서 당명을 바꾸는 이른바 당내 ‘권력교체기’에도 큰 잡음은 없었다. 지난해 4·11총선 공천에서 탈락한 친이(친이명박)계들은 반발했지만 이번에는 이 대통령이 침묵했다. 박 당선인은 대선 순항을 위해, 이 대통령은 국정 마무리를 위해 서로를 필요로 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3월 한 토론회에서 박 당선인에 대해 “우리나라에 그만한 정치인이 몇 사람 없다”고 치켜세웠다. 박 당선인은 그해 8월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대해 “포퓰리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거드는 등 서로를 예우했다.

갈등과 화해를 반복하면서도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한 두 사람이 이 대통령의 특별사면 단행 이후 또다시 화해 국면을 맞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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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윤완준 기자 egija@donga.com
#박근혜#미래기획위원회#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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