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를 리모델링하자]대통령 홀로 본관에 덩그러니… 소통과 거리 먼 ‘외딴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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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통과 비효율의 공간 청와대, 이제는 바꿔야

“테니스 쳐도 되겠구먼….”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2월 25일 국회에서 취임식을 마친 뒤 청와대 본관 2층 집무실에 들어서자 주변 참모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문을 열고 집무용 책상까지 15m가량 떨어진 ‘광활한’ 집무실을 보고 평소 즐기는 테니스를 해도 될 정도라고 촌평한 것이다. 천장까지의 높이는 3m가 넘어 특급호텔 로비를 연상케 했다. 그러나 정작 본관 집무실 주변에는 제1, 2부속실 직원과 경호원들이 전부였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 본관에 주요 참모들을 입주시킬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곳곳에 포진한 기둥 둘레만 1m가 넘어 대형 공사가 불가피했다. 그러던 중 촛불시위가 터졌고 리모델링 계획은 물 건너갔다.

이렇듯 전체 면적이 25만 m²인 청와대 공간의 문제점은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동이 500m가량 떨어져 있는 데다 본관 공간이 비효율적이고 심지어 권위적인 데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대통령이 참모 호출하면 빨라야 5분 이상 걸려

이 대통령이 급한 용건으로 비서동에 있는 참모를 불러 만나려면 5분에서 길게는 8분가량 걸린다. 대통령이 수시로 찾는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의 경우 대통령 호출 지시→제1부속실에서 연락→박 대변인, 차량 호출→탑승 및 이동→본관 1층 도착 및 경호시설 통과→계단으로 2층 집무실까지 이동에 평균 5분이 걸린다. 하금열 대통령실장이나 수석비서관들도 마찬가지. 전용차량이 없는 비서관들은 걸어가기 때문에 10분 정도 걸린다. 한 관계자는 “지난주 눈이 많이 왔을 때는 종종걸음으로 가서 훨씬 더 많이 걸렸다”고도 했다.

그런데 정작 본관은 지나치게 넓고 비서동은 옆 사람의 팔이 닿을 정도로 미어터지는 게 현실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3년 취임 후 본관에 도착해 “기수야(김기수 수행실장), 사무실에 어떻게 가노?”라고 물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가 설계한 히틀러 총통관저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권위적으로 설계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 청와대 본관에 들어가 보면 박물관을 연상케 할 정도다. 본관에는 대형 회의 공간만 다섯 곳이다. 1층 왼쪽에는 국무회의가 열리는 세종실이, 오른쪽에는 충무실과 인왕실이 있다. 10m가량의 복도를 지나 전실(前室)을 거쳐야 나오는 세종실은 보통 일주일에 한두 차례 사용된다. 국무위원 전원이 들어가도 옆 사람이 닿지 않는다. 세종실만큼 넓은 충무실은 그나마 전용회의도 없다. 식사를 겸한 회의공간으로 사용되는 충무실은 티타임을 위한 별도 공간도 있다. 인왕실에선 주로 다과회가 열린다. 2층에는 여야 대표 초청 회동 등을 위한 백악실이 있고 반대편의 또 다른 대형 공간인 집현실에선 수석비서관회의 등이 열린다.

비서동 사정은 전혀 다르다. 제1, 2부속실, 국가위기관리실 산하 직원 등을 제외하고 하금열 대통령실장과 전 수석비서관, 기획관, 행정관 300여 명이 3개 비서동에 나눠 일하고 있다. 이 중 위민 2, 3관은 1968년에 지어져 안전진단 결과 붕괴 위험 수준인 ‘D판정’을 받아 청와대는 재건축을 위한 예산 편성을 시도했지만 국회에서 번번이 깎였다.

○ 본관에 대통령실장 등 핵심 참모 들어가야

전문가들은 이처럼 불통, 방만한 공간 활용을 막기 위해선 우선 핵심 참모들이 본관으로 이주하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한다. 특히 대통령이 수시로 찾는 대통령실장과 신설될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해 홍보·경제수석비서관은 본관으로 이동해 현안을 놓고 대통령과 수시로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미국학)는 “대통령실장과 국정 주요 현안을 다루는 수석비서관들을 본관으로 옮겨 가급적 미 백악관 식에 근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동아일보가 지난해 6월 1일부터 10월 14일까지 대통령의 공식 일정을 분석한 결과 이 대통령은 홍보수석 외교안보수석(신설될 국가안보실장) 경제수석 등을 가장 많이, 자주 만난 것으로 조사됐다.

현 청와대에선 본관에 일부 참모가 이동한 뒤 비서동을 본관 인근 용지에 새로 짓는 방안이 자주 거론된다. 한 핵심 관계자는 “위험 진단을 받은 비서동을 새로 짓는다면 본관에서 100m가량 떨어진 빈터에 짓는 게 낫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도 그런 의견을 밝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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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헌 기자 ddr@donga.com   
#청와대#대통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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