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삼미 슈퍼스타즈는 패배의 화신… 지면 질수록 오기 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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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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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버스토리 - 프로야구 원년 팀 삼미 슈퍼스타즈 골수팬, 전홍재-김진옥 씨

1982년 화려하게 나타나 1985년 3년 6개월 만에 초라하게 져버린 별, 삼미 슈퍼스타즈가 그들의 가슴에서 30년이 지난 지금도 빛나고 있다. 그 시절 ‘패배의 화신’ 삼미를 잊지 못하는 그들은 지금도 삼미 모자를 쓰고 삼미의 ‘분신’인 넥센 저지를 입고서 어린 시절 그때처럼 야구장으로 향한다. 삼미 원년 팬 전홍재 씨(위)와 김진옥 씨.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김진옥 씨 제공
1982년 화려하게 나타나 1985년 3년 6개월 만에 초라하게 져버린 별, 삼미 슈퍼스타즈가 그들의 가슴에서 30년이 지난 지금도 빛나고 있다. 그 시절 ‘패배의 화신’ 삼미를 잊지 못하는 그들은 지금도 삼미 모자를 쓰고 삼미의 ‘분신’인 넥센 저지를 입고서 어린 시절 그때처럼 야구장으로 향한다. 삼미 원년 팬 전홍재 씨(위)와 김진옥 씨.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김진옥 씨 제공
혹자는 프로야구 원년 구단 삼미 슈퍼스타즈를 패배에 지쳐 있던 타 구단의 ‘영양간식’, ‘자양강장제’라고 했다. 심지어 제 한 몸 헌신해 원년의 5개 구단을 더 월등하게 보이도록 해줬다며 ‘프로야구의 거름’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역사에 남을 최약체 삼미가 패배를 거듭할수록 더 열정적인 응원을 퍼부었던 ‘기묘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삼미가 청보, 태평양, 현대를 거쳐 넥센 히어로즈(연고지는 서울이지만 현대 선수들이 옮겨갔음)로 변하도록 삼미의 흔적이 남아 있는 팀을 응원하고 있다. 항상 지기만 하는 삼미를 그들은 왜 그렇게 사랑했을까. 왜 아직도 그 ‘분신’을 응원하고 있을까.

○ 기록적인 굴욕의 팀, 삼미

“우리의 슈퍼스타즈는 마치 지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온 패배의 화신과도 같았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오늘도 지고, 내일도 지고, 2연전을 했으니 하루를 푹 쉬고 그 다음 날도 지는 것이다.”-박민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중

1982년, 동물을 마스코트로 내세운 5개 구단과 달리 삼미는 금방이라도 홈런을 칠 듯 배트를 들고 있는 근육질의 슈퍼맨을 내세웠다. 삼미는 그러나 청보로 바뀌기 전 3년 6개월 동안 끝내 슈퍼맨으로 변하지 않았다. 그들의 기록은 실로 기록적이었으며 모두가 “설마 그런 기록이…”라며 믿지 않을 정도로 굴욕 그 자체였다.

1982년 후기리그에서 5승 35패(승률 0.125)로 기별 최저 승률 기록. 82년 15승 65패(승률 0.188)로 시즌 최저 승률 기록. 85년 시즌 팀 최다 연패인 18연패 기록(82년 본인들이 세운 16연패 기록을 스스로 갈아엎었음). 82년 OB 베어스에 시즌 특정 팀 상대 전승(16전 전승) 기록 선물. (기타 충격적인 기록 생략)

헛웃음을 자아낼 정도로 계속되는 패배였지만 패전이 계속될수록 삼미에 더 강한 애착을 보인 팬들이 있었다. 혹자는 이들에 대해 심한 패배감으로 인한 반항심이 분출된 것이라거나 ‘부분강화효과’에 시달린 것이라 분석했다. 부분강화효과란 보상(강화)이 언제 주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보상이 주기적으로 주어지는 상황에서보다 특정 행동이 한층 더 오래 지속된다는 걸 말한다. 도박꾼은 도박을 그만두려고 하다가도 뜻밖에 돈을 따게 되면 노름을 그만두지 못한다. 삼미는 도대체 언제 한번 이길지 예측 자체가 불가능한 팀이었다. 어쩌다 한번 이기면 팬들은 잭팟을 터뜨린 것처럼 기뻐했다. 그렇다면 삼미만을 목이 터져라 외쳤던 팬들은 단지 부분강화효과 때문에 삼미에 ‘중독’됐던 것일까.

○ 그 별은 지금도 나의 별

1982년 당시 국민학교(현재의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전홍재 씨(42·회사원)는 이북이 고향인 아버지의 강한 ‘연고우선주의’ 탓에 삼미 슈퍼스타즈 어린이 팬클럽 회원이 됐다. 당시 삼미는 인천은 물론이고 경기, 강원, 이북 5도까지 모두 아울러 연고로 삼았다.

그에게도 한때 부분강화효과가 찾아왔다. 전 씨는 “‘언젠가는 한번 이기겠지’라는 마음이 생겨 패배가 거듭될수록 일부러 더 많이 삼미 점퍼를 입고, 모자를 쓴 채 학교에 가는 바람에 놀림감이 됐다”고 했다. 당시 해태 타이거즈, OB 베어스, MBC 청룡 어린이 팬클럽 회원인 친구들은 잘나가는 구단 점퍼를 입고 “치지도 못하고 잡지도 않는 삼미”, “꼴찌 팀 좋아하면 너도 꼴찌나 마찬가지”라며 전 씨를 따라다니며 놀렸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 한 국민학교의 유일한 삼미 팬이였던 그는 “그 시절 나는 삼미 팬이 아니라 삼미 그 자체였다. 아이들도 나를 팬이 아닌 삼미 선수처럼 대했다”라고 했다.

일관되게 지는 삼미였지만 그들이 준 선물이 있었다. 야구를 있는 그대로 즐기는 법과 심하게는 10번에 한 번꼴로 돌아왔던 승리에 더 크게 감동하는 법. 삼성의 타자 오대석에게 국내 최초의 사이클 히트를 내주고, 82년 당시 1이닝 최다 안타였던 1이닝 9개 피안타를 기록하고, 삼성에 20점 차로 패한 끝에 겨우 거두는 한 번의 승리가 얼마나 많은 선수들의 눈물로 만든 것인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가 처음부터 계속 승승장구하며 이면에 어떤 아픈 스토리도 없는 팀과 선수들을 좋아했더라면 그렇게 큰 감동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삼미가 청보에 인수돼 하루아침에 청보 핀토스로 바뀌었을 때도, 태평양 돌핀스를 거쳐 현대 유니콘스, 히어로즈까지 프로야구 역사상 4번이나 소유주가 바뀐 전무후무한 팀이 되었을 때도 크게 충격 받지 않았다. 그가 좋아하던 팀은 그대로 있었고, 추억도 팀 안에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기업이 바뀐다는 건 그에게 “그저 같은 사람이 ‘개명’한 것일 뿐”이었다.

그는 지금도 가끔 별 안에 S자가 들어 있는 삼미 모자를 쓰고 지금의 넥센 히어로즈 저지를 입고서는 삼미의 분신인 넥센을 응원하러 간다. “넥센 경기를 보러 가면 그곳엔 삼미도 있고, 청보도 있고 역사도, 내 성장 과정과 추억도, 좌절과 희열도 모두 있어요. 그 팀이 부산으로 연고를 옮기든 안드로메다로 가든 평생 함께할 겁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어떻게 좋아하는 팀을 바꿀 수가 있어?” 삼미 골수팬을 자처하는 김진옥 씨(45·자영업)가 ‘변심’ 후 다른 팀을 찾아 떠난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자주 하는 말이다. 그는 중학생 때 산 삼미 슈퍼스타즈 모자와 삼미 투수였던 임호균 선수의 사인볼을 30년 가까이 보관 중이다. 그의 가슴속에는 여전히 1985년 사라진 삼미의 별이 빛난다.

김 씨는 중학교 때부터 20여 년간 삼미와 청보, 태평양, 현대 선수들이 성장하고 슬럼프에 빠지고 재기하는 격동의 스토리를 모두 지켜봐 왔다. 그에게 삼미와 그 분신들은 야구팀을 넘어 동고동락한 ‘후천적 혈연’이었다.

이번 달 넥센 김수경 선수가 은퇴를 할 때는 한동안 잠을 못 이뤘다. 그가 신인왕을 하고 공동 다승왕에 올랐다 허리 부상에 시달리며 고생하는 모든 과정을 현대 시절부터 13년 동안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의 은퇴는 은퇴가 아니라 함께한 추억의 퇴장 같은 것이었다.

김 씨는 올해 넥센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자 더이상 응원을 나오지 않았던 몇몇 팬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기는 팀을 좋아하는 거라면 삼성 팬이 되면 되잖아요. 나는 이기는 것 때문에 팀을 좋아하지는 않아요. 이기든 지든 그 과정을 함께해 온 팀을 좋아하는 거죠.”

1998년 현대 유니콘스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을 때 그는 “딱 5분만 좋았고 그 뒤 너무 허전했다”라고 했다. “이제는 그 팀이 더이상 같이 고비를 넘기며 함께 감동의 스토리를 써나갈 팀이 아니구나 싶어서 한동안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패배의 화신이었던 팀이 현대로 분해 낯설게도 4번이나 우승하는 걸 보면서 한 차례 혼란을 겪었지만 여전히 그는 삼미와 그 분신을 응원한다. “삼미의 경기는 참혹했어요. 삼미 팬이라는 이유로 경기장에서 먹다 남은 닭다리 세례도 많이 받았고요. 그래도 어떻게 그 팀을 떠나겠어요. 패배만 한 팀이라고 삼미를 부정하고 떠나는 순간 프로야구 개막 이후 제가 걸어온 30년의 인생도 모두 사라지는 거죠.”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삼미#삼미 슈퍼스타즈 골수팬#열정적인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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