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단돈 6000만원 지원받아 만든 세계최초 60프레임 3D영화

동아일보 입력 2012-10-23 03:00수정 2013-08-13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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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3D 영화산업 희망을 봤다”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초당 60프레임 3D 입체영화가 국내에서 제작돼 지난달 성공적으로 시사회를 마쳤다. ‘신 소림사 주방장’이란 제목의 이 영화는 기존 3D 영화보다 훨씬 속도감 있는 액션 장면도 어지러움 없이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위 사진은 스태프가 카메라 두 대로 들어오는 촬영 정보를 확인하는 모습, 아래는 영화 오프닝 장면이다. 투아이디지털 제공
2월 공고가 났다. ‘첨단기술 실험 단편 제작 지원.’ 영화진흥위원회가 단편영화 제작을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가슴이 뛰었다. 광고를 촬영해온 신경원 촬영감독이 지쳐가던 때였다. 제대로 된 3차원(3D) 영화를 만드는 게 신 감독의 꿈이었다. 그가 촬영 조감독으로 참여했던 영화 ‘나탈리’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만 같았다. 3D로 촬영해 상영한 국내 첫 영화였지만 스토리가 형편없다는 소문이 나면서 흥행에 참패했다. 사람들은 ‘여배우의 노출 장면이 많은 3D’ 정도로만 기억했다.

공고를 본 신 감독은 10년간 다양한 영화의 스태프로 함께 일해 왔던 리건(본명 이경식)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걸로 한 번 해보자.”

리건 감독은 4년을 쉬었다. 2006년 영화 ‘경계’의 조감독으로 몽골 로케이션을 떠났을 때 얻은 급성간염 때문이었다. 영화가 좋아 영화학과에 입학했고 10년 넘게 영화만 찍었지만 한창 일해야 할 30대 중반의 나이에 병을 얻고 입원을 하니 일거리가 들어올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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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정성 들여 기획서를 썼다. 신 감독에겐 다시 기회가 없을지 모를 3D 영화를 찍을 찬스였고, 리건 감독에겐 병을 앓고 난 뒤 처음으로 다시 확성기를 잡을 수 있는 기회였다. 보통 3D 영화라면 안 될 것 같았다. “60fps(frame per second·초당 프레임) 영화가 어떨까? 우리 장비라면 할 수 있을 텐데.” 3D 영상 제작 전문업체인 투아이디지털의 이동원 팀장이 합류하면서 아이디어를 보탰다.

의기투합한 이들에게도 60프레임 3D 영화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일이 국내 영화산업은 물론이고 급속히 보급되고 있는 3D TV, 나아가 전자산업에 기여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서로를 격려했다.

한국 3D영화의 현장 ‘신 소림사 주방장’의 리건 감독(가운데 모자 쓴 사람)과 신경원 촬영감독(카메라 잡은 사람) 등이 영화의 주요 무대로 쓰인 중국음식점에서 배우들의 움직임을 상의하며 촬영하고 있다. 투아이디지털 제공
영화는 눈속임의 예술이다. 1초에 24장의 정지된 사진을 넘겨가면서 보여줘 우리 눈이 마치 움직이는 물체를 보는 듯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의 눈이 정지된 개별 영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사진의 수는 1초에 10∼15장 정도가 고작이다. 이렇게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1장의 사진을 1프레임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상영되는 극장이나 TV의 영상은 대부분 24프레임을 1초 안에 보여준다.

문제는 3D 영화의 특징이었다. 3D 영화는 입체감을 내기 위해 왼쪽과 오른쪽 눈에 두 대의 카메라로 동시에 촬영한 각각 다른 영상을 보여준다. 이 또한 24프레임으로 촬영되기 때문에 실제론 왼쪽과 오른쪽 눈이 각각 12장의 영상밖에 보지 못한다. 특히 24프레임으로 제작한 3D 영화는 빠른 움직임과 액션 장면에 약하다. 2009년 12월 개봉해 3D 열풍을 일으켰던 영화 ‘아바타’조차 이런 문제 때문에 빠른 움직임이 등장할 때는 일부러 슬로모션 효과를 주기도 했다.
▼ 남들 하루 25컷 찍을 때, 50컷씩 촬영… 할리우드 앞질러 ▼

아바타를 만든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이런 문제 때문에 2015년 개봉 예정인 ‘아바타2’는 60프레임 3D 영화로 찍겠다고 선언했다. 60프레임은 말 그대로 초당 60장의 장면을 찍어 상영하는 3D 영화다. 하지만 캐머런 감독조차 영화를 제작하는 중이다.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반지의 제왕’을 만든 뉴질랜드의 피터 잭슨 감독이 올해 말에 3D 영화 ‘호빗’을 새로운 방식으로 찍어 상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는 48프레임으로 60프레임보다는 만들기 쉬운 방식이다.

영진위는 리건 감독과 신 감독이 제출한 ‘신 소림사 주방장’ 기획서를 검토했다. 리건 감독이 2003년 처음 확성기를 들고 감독했던 단편영화가 ‘소림사 주방장’이었다. 그때 계획했던 액션영화가 3D 기술 덕분에 9년 만에 제작 기회를 얻은 셈이다. 하지만 5월 착수보고회에서 영진위 심사위원들은 기획서를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영화 시사회가 9월 25일로 예정돼 있었다. 후반작업까지 포함한 제작기간이 100일 남짓인데 20분짜리 3D 영화, 그것도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영화를 만든다는 게 무리로 보인다는 얘기였다.

심사위원들은 “한국에선 이렇게 못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6000만 원을 지원했다. 실패하면 지원금을 반환해야 했지만 이들이 어떻게든 해내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마치 로켓 한 번 성공적으로 발사해 본 적 없는 한국이 단번에 화성으로 탐사선을 발사하겠다는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그러고 이들은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들을 시작했다.

일반적인 2차원(2D) 영화도 하루에 보통 25컷을 촬영한다. 하지만 리건 감독은 하루 평균 50컷을 찍었다. 그래야 300컷에 가까운 전체 장면을 일주일 안에 촬영할 수 있었다. 날짜가 넘어간다는 건 제작비가 초과된다는 뜻이었다. 대부분의 장면이 빠른 액션에 강한 60프레임 영화의 장점을 소개하기 위해 설계됐기 때문에 중요한 건 액션 장면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한 뒤 마음을 다잡겠다며 시작했던 무술 실력이 도움이 됐다. 장면을 설계하고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데 유도와 합기도가 각각 3단인 리건 감독의 경험이 큰 역할을 했다.

리건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쓰는 촬영 장비가 우리가 촬영할 때 썼던 것과 동일한 장비”라고 말했다. 소니의 카메라, 스리얼리티의 리그(촬영용 카메라를 고정하는 장비) 등 세계 어느 영화 촬영 현장에서건 거의 같거나 동일한 장비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리건 감독은 “할리우드와 똑같은 장비로 일하면서 한국에선 안 된다는 건 틀렸다”며 “오히려 한국이라서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촬영을 맡았던 신 감독은 삼성전자 LG전자 같은 회사가 한국에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했다. 실수를 최소화하면서 빠른 촬영을 하기 위해서는 노하우가 필수적인데 “국내 전자회사들이 3D TV 판매를 위해 3D 광고를 제작하면서 노하우를 쌓을 수 있었다”는 얘기였다.

최종 상영도 문제였다. 국내에는 극장에서 60프레임 3D 영화를 상영할 설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리건 감독과 신 감독은 홍콩에서 영사를 위한 서버를 대여했다. 한 차례 상영을 위한 것이라 촬영 뒤 다시 반납해야 했지만 이렇게 성공적으로 상영한 경험이 쌓이면 국내 극장들도 설비를 바꾸리라는 생각에 영진위가 적극적으로 대여를 주선했다.

시사회는 성공적이었다. 관람객들은 빠른 무술 액션과 오토바이 추격 장면에서도 떨림과 깜박임이 없는 화면에 박수를 보냈다. 이 영화는 12월 영진위 기술콘퍼런스에서 다시 공개될 예정이다.

이 영화는 상영 장비 문제로 극장에서는 아직 쉽게 볼 수 없지만 3D TV로는 상영이 가능하다. 실제로 리건 감독과 신 감독은 삼성전자 3D TV를 이용해 최근 시사회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3D TV가 초당 240프레임까지 재생할 수 있는 240Hz(헤르츠)를 지원하기 때문이다. 신 감독은 “우리 영화가 다른 60프레임 3D 영화 제작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면 3D TV를 많이 파는 국내 기업들의 매출도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소림사주방장#3D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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