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경북]‘한국형 스티브 잡스’ i형 인재 포스텍이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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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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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형 인재 키우는 포스텍

포스텍 미래IT융합연구원 김수영 원장(오른쪽)과 창의IT융합공학과 학생들이 융합형 인재에 관한 토론을 하고 있다.
포스텍 미래IT융합연구원 김수영 원장(오른쪽)과 창의IT융합공학과 학생들이 융합형 인재에 관한 토론을 하고 있다.
포스텍 본관 옆 중앙광장에는 과학자 흉상 좌대가 6개 있다. 이 가운데 4개는 아이작 뉴턴, 알베르 아인슈타인, 제임스 맥스웰, 토머스 에디슨 흉상이 자리잡고 있다. 나머지 2개는 ‘미래의 한국과학자(?)’라고 쓰여 있고 얼굴이 없다. 개교 때 세운 이 상징물은 포스텍이 추구하는 정신을 잘 보여준다. 노벨과학상을 넘어 인류에 공헌하는 걸출한 과학자를 잉태하고 결실을 맺고 싶은 염원이 녹아 있다. 교수 학생 연구원 직원 5070여 명의 꿈이다. 졸업생 1만4300여 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난달 4일 ‘뉴욕타임스’는 ‘누가 다음의 매사추세츠공대(MIT)인가?’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지난주 영국 더 타임스는 세계대학평가에서 새로운 방식인 설립 50년 이하 대학의 발전 가능성을 살폈다. 50년이라면 삶의 중년기라고 할 수 있지만 대학의 경우에는 청년기이다. 이 평가는 어떤 대학이 미래에 하버드나 케임브리지대가 될 수 있는가를 전망한 것이다. 개교 50년 이하 100대 대학에서 세계 1위는 한국의 포스텍에 돌아갔다. 대학의 막대한 지원과 정부의 후원 아래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다….’

○ 대붕의 날갯짓

포항제철과 함께 영일만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포스텍의 탄생과 26년 동안의 ‘괄목상대’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지만 그렇다고 이쯤에서 만족하고 안주할 수는 없다. 계절에 관계없이, 학기 중이든 방학이든 포스텍 캠퍼스를 둘러보면 고요함 속에서 긴장감이 느껴진다. 오가는 사람들은 그가 교수인지 학생인지 연구원인지 얼핏 분간하기 어렵다. 모두 무엇인가 집요하게 추구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빈 좌대’의 주인공이 되거나 주인공이 나오도록 협력해야 한다는 것일까.

지난 26년 동안 포스텍이 달려온 속도가 시속 26km였다면 그 속도를 일단 50km로 가속시킬 수 있는 새로운 엔진 날개가 최근 포스텍에 생겼다. ‘미래IT융합연구원’(i-랩)과 ‘창의IT융합공학과’(CITE)가 그것이다. 장자(莊子)에 나오는 ‘대붕(大鵬)이 한번 기운을 내어 9만 리를 올라가 날면 그 날개는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 같은 원대한 꿈을 펼치려는 것이다. 장자 ‘소요유(逍遙遊)’ 편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터무니없는 공상이 아니라 전국시대 당시 발달한 천문학과 물리학을 바탕으로 한 ‘과학적 상상력’이었다.

CITE는 지난해 말 선발한 학부생 20명, 대학원생 18명을 대상으로 올해 3월부터 교육을 시작했다. 연구원은 4월 문을 열었다. 정부가 나라의 미래를 위해 추진하는 IT명품인재양성 프로젝트를 치열한 준비 끝에 따냈다. 과학기술 교육의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역사적’이라는 말은 그저 듣기 좋은 수식어가 아니다. 지식경제부와 포스텍을 비롯해 경북도 포항시 등 지자체, 포스코 삼성전자 SK텔레콤 LG 등 27개 기업이 참여해 명실상부한 글로벌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모든 힘을 모아 탄생시켰다. 학생 1명에게 들어가는 교육비가 연간 1억 원이다. 여기서 마음껏 날개를 펴고 싶어 하는 전국의 과학고와 영재고, 대학 졸업생들이 20 대 1 경쟁을 거쳐 CITE의 첫 번째 주인공이 됐다. MIT 미디어랩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연구소라는 역사를 열어가기 위한 첫 단추를 끼웠다.


○ MIT 미디어랩을 넘어서라

i-랩과 CITE가 일단 따라잡으려는 모델은 MIT 미디어랩이다. 멀티미디어 개념을 처음 제시하고 ‘디지털이다’(1995년)라는 저술로 유명한 니컬러스 네그로폰테 교수 등이 1985년 설립했다. 상상력 넘치는 기발하고 창조적인 연구로 ‘융합의 최고수’라는 별명을 얻으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대학연구소다. 가상현실, 3차원 홀로그램(입체상), 유비쿼터스, 착용식 컴퓨터 같은 개념이 모두 이 연구소에서 나왔다. IT는 다양한 산업과의 융합을 통해 발전한다는 확고한 신념에 따라 세계 100여 개 기업과 융합연구시스템을 갖췄다. 포스텍은 지난해 MIT 미디어랩과 협력하기로 했다. i-랩 개원식에 MIT 미디어랩 소장을 지낸 스토니 브룩 뉴욕주립대 부총장이 참석한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다. 뉴욕주립대도 i-랩 운영에 공식적으로 참여한다.

i-랩과 CITE가 가야할 길은 쉽지 않다. 없던 길을 새로 닦아야 하는, 한편으로는 험난하고 한편으로는 설레는 그야말로 융합적으로 풀어내야 할 상황과 마주하고 있다.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소통 시스템 등 휴먼웨어 컴퓨팅, 시청각 인식기능 등 지능형 로봇, 진단보조시스템 등 유비쿼터스 헬스, 자율주행이 가능한 지능형 융합자동차, 바이오 센서, 차세대 반도체 기반 기술 같은 첨단기술뿐 아니라 융합혁신에 바탕한 기술경영과 창조적 창업경영, 인문 예술과 과학기술을 융합하는 패러다임을 개발하는 과제 등 어느 하나 만만한 게 없다.

‘초일류 국가로의 성장 원동력을 위한 글로벌 연구!’라거나 ‘기술과 예술, 과학과 문화의 융합으로 미래를 이끌 새로운 IT기술!’ 같은 거창한 슬로건을 내걸어도 학생과 교수가 좁은 어항이 아니라 마음껏 헤엄칠 수 있는 큰 물이 없으면 소용없는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i-랩과 CITE의 환경과 분위기를 들여다보면 예감이 좋다. 전담교수 16명과 겸임교수 19명, 학생 38명에게 ‘i형 인재’를 향한 목표와 의지가 뚜렷하다.

‘한국형 스티브 잡스’를 위한 i형 인재는 △첨단공학지식의 심화 △혁신정신의 실천 △인문학적 상상력 등 3가지 역량을 중심으로, 이를 달성하기 위해 △강한 몰입력 △호기심 △경계를 넘나드는 능력 △통찰력 △프런티어 정신 △혁신적 자본주의 정신 △글로벌 마인드 △새로운 정체성 △성실성 등 9가지 잠재력을 개발하려는 것이다. ‘i형’은 이 12가지 능력을 나타내는 영문 약자이다.

○ 설레는 창의적 고민


학생들의 잠재력이 뛰어난 만큼 학부 과정도 일반적인 4년이 아니라 3년이다. 대학원도 석·박사 과정을 통합해 3년이다. IT융합기술에 관한 집중 교육과 함께 인문 예술 능력을 버무리지만 이를 교수가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철저하게 학생들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자기주도형으로 진행한다. ‘PGS’라고 부르는 ‘자기계발계획서’는 가장 중요한 교육이다. 교수든 학생이든 단기간에 성과를 내도록 강요하는 분위기가 되지 않도록 하고 연구나 과제를 실패하더라도 이는 더 나은 창의적 활동을 위한 디딤돌이라는 확실한 공감 또한 중요한 환경이다.

학생들의 ‘창의적 고민’은 귀기울일 만하다. 학부생 전원은 12월 말까지 미국에서 연수 중이다. 대학원생들은 나중에 창업을 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았다.

올해 2월 고려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한 박재민 씨(27)는 15년쯤 뒤를 내다보면서 기계전자 분야에서 진정한 실력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박 씨는 “공대 현실이 자기 전공만 공부하다 취업하는 쪽으로 흘러 많이 아쉬웠다”며 “기계와 전자를 융합해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분야에서 창업을 해내겠다”고 말했다. 김정한 씨(38)는 지난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들어왔다. 새로운 방식의 예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소셜미디어와 영화를 결합하는 데 착안해 ‘소셜무비’라는 용어도 만들었다. 김 씨는 “이미 개인적으로 활용하는 미디어랩을 만들었다”며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굉장히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교수들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기존 교육방식이 가두리 양식장에서 먹이를 주며 키우는 식이었다면 CITE는 학생들이 경계 없이 큰 바다를 헤엄치도록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김수영 i-랩 원장 겸 CITE 주임교수(56)는 “융합(融合)이라는 말이 흉내내기식이 아니라 명실상부 바로 서는 교육 현장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융’을 ‘조화롭게 녹여서 크게 밝히고 번창시켜 널리 통하도록 하는 능력’으로, ‘합’은 ‘경계를 넘어 서로 만나 조화로운 힘을 발휘하는 능력’으로 설명했다.

:: 포스텍 (2012년 현재) ::

설치학과: 학부―11개 학과, 1개 학부/일반대학원―6개 학과, 7개 학부, 5개 협동과정
전문대학원―3개 과정
교수: 전임 266명, 비전임 165명
학생: 학부 1414명, 대학원 2185명
연구원: 798명
행정직원: 249명
졸업생: 학부 5622명, 대학원 8771명
등록금 대비 장학금 환원율: 51.5%
연간 예산: 3402억 원
교수 1인당 학생 수: 학부 5명, 대학원 8명
연간 연구비 수주: 2422억 원
교수 1인당 연간 연구비: 9억1000만 원
연간 특허 출원·등록: 782건
부설연구소: 포항가속기연구소, 나노기술산업화지원센터 등 69개
해외 자매결연대학: 24개국 93개 대학

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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