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깨사-무용+인디밴드 ‘숭숭가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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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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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와 장르, 무대와 객석 담장에 바람 숭숭 통하게”

《문화의 시대 21세기. 몇 발짝 앞선 아이디어와 종횡무진, 탈장르적 시도로 문화계에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이들이 있다. 이들에게 기존의 판은 낡고, 틀은 좁다. 새로운 눈높이와 뜨거운 몸짓으로 판을 깨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얘기를 연재한다.》

숭숭가무단의 기본적인 모토는 ‘즐긴다’와 ‘펼친다’. 멤버 7명이 공연장이자 작업실인 서울 광진구 ‘가본 곳’에 모였다. 뒷줄 오른쪽부터 시계반대 방향으로 이말씨 현지예 조은서 홍아라 리휘 문득 씨, 가운데는 제이신 씨.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숭숭가무단의 기본적인 모토는 ‘즐긴다’와 ‘펼친다’. 멤버 7명이 공연장이자 작업실인 서울 광진구 ‘가본 곳’에 모였다. 뒷줄 오른쪽부터 시계반대 방향으로 이말씨 현지예 조은서 홍아라 리휘 문득 씨, 가운데는 제이신 씨.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6월 ‘가본 곳’에서 열린 ‘인간에게 이로운 공연’ 시리즈 1탄 ‘꼬리에 꼬리에 꼬리에 꼬리를 잡고’. 사진 제공 숭숭가무단
6월 ‘가본 곳’에서 열린 ‘인간에게 이로운 공연’ 시리즈 1탄 ‘꼬리에 꼬리에 꼬리에 꼬리를 잡고’. 사진 제공 숭숭가무단
무용수와 인디밴드가 만났다. 공연도, 출판도, 문구점도 한다.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지속 가능한 예술’을 꿈꾼다.

올해 1월 결성된 ‘숭숭가무단’ 얘기다. 최근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 있는 이들의 작업실 겸 공연장 ‘가본 곳’을 찾았다. 공교롭게도 가무단 이름처럼 천장에서는 숭숭 물이 샌다. 비만 오면 양동이 서너 개를 동원해야 한다. 건물 주인과 통화를 끝낸 가무단의 ‘이말씨’(본명 이한선·30)가 웃으며 농담을 했다. “몇 달 전부터 이렇게 물이 떨어져요. 어휴, 저희 정말 영세하다니까요.”

이 가무단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전문사를 졸업하고 안무와 각종 창작작업을 하는 리휘(27) 조은서 씨(29), 서울대 생명공학부를 마치고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는 현지예 씨(29), 인디 소울그룹 ‘마호가니 킹’의 멤버 이말씨 문득(본명 진문식·30) 홍아라 씨(29), 그리고 솔 가수인 제이신(본명 신정훈·30) 씨가 모여 만들었다. 스스로 자신들의 소속사이자 기획사인 ‘어떤’을 만들었고 ‘숭숭출판사’와 (어쩌면 예술과 관계없는 듯한) ‘숭숭문구’도 운영한다.

○ ‘유학사기’가 발단?

공연장 ‘CJ 아지트’ 개관공연을 겸해 열린 1월 첫 공연에서는 ‘화양’을 무대에 올렸다. 무용수와 가수가 함께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종종걸음을 걷거나 바닥을 바라보다 노래를 불렀다. ‘춤답지 않은 춤’이었지만 관객 평가에서 만점인 별점 5개를 받았다. 7월에는 ‘화양’에 콘서트 형식의 ‘화창’을 덧붙인 1시간짜리 단독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4월에는 리 씨가 전세금을 내놓고 다른 단원들이 돈을 보태 ‘가본 곳’을 열었다. 문득 씨의 아버지가 인테리어를 돕고 멤버들이 직접 방 천장을 뜯었다. 6∼8월에는 ‘인간에게 이로운 공연’ 시리즈를 올렸다.

“홍보를 거의 안 했는데도 1만 원짜리 티켓을 사서 보러 와주시는 관객들이 계셨어요. 그때 용기를 얻었죠. ‘할 수 있구나’라고.”(조 씨)

그러나 리 씨가 유학사기를 당하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은 이뤄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2004년에 한국에 들어왔어요. 중국에서 무용을 전공했지만 회의가 들었죠. 한국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하려고 했는데 사기를 당했어요. 1년 치 학비와 기숙사비를 다 냈는데 학교는 산골에 있는 신학대. 시각디자인과란 과는 아예 없고….”

중국동포인 리 씨는 그 일을 겪고 “우울해서 서울에 올라왔다”고 했다. 평소 노래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보컬 트레이닝을 받고 싶어 이말씨를 찾았다. 그 인연이 커져 마호가니 킹의 제이신, 그리고 리 씨와 친분이 있던 조 씨와 현 씨가 만났다.

○ “대단한 뜻? 그냥 잘하고 싶다”


현 씨는 “우리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이른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뭔가 대단한 뜻이 있다거나 열정이 있다고 그려질까 걱정된다. 우린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했다. 대단한 뜻보다는 그저 ‘더 잘하고 싶다’는 소박한 욕심이 출발점이란다.

“무대에 여러 번 서봤지만 아직도 떨려요. 그런데 무대 위에서 노래가 아닌 다른 걸 하니까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없이 자유로웠어요. 제 노래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무대에 서기로 했죠.”(이말씨)

리 씨는 “공연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든 직업적 매너리즘에 빠진다. ‘내가 잘하면 관객도 좋아하겠지’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아니다. 함께 매너리즘과 습관을 깨고 잘해온 걸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싶었다”고 했다.

한자리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생각은 숭숭출판사와 숭숭문구를 낳았다. 출판사 허가를 얻어 시집 ‘숭숭은머리나기도전에눈이생기기도전에혹은발이생기기도전에벌써해봤다’를 냈다. 시와 어울리는 음반도 만들어 함께 내놓았다. 출판사보다 더 엉뚱한 ‘문구’를 만든 것은 리 씨의 그림 실력 때문이다. 리 씨가 그린 일러스트를 표지로 수첩을 만들고 숭숭문구라는 상표를 달았다.

함께 하는 활동에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제이신 씨는 “무대 위에서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숭숭가무단에선 그걸 버려야 할 때도 있다. 공연의 전체 그림에 나를 맞추는 게 힘들 때도 있지만 그만큼 시야가 넓어진다”고 말했다.

○ ‘지속 가능한 예술’을 향해


리 씨는 “외부에서 큰 공연을 여러 번 해봤지만 홍보와 돈, 기획 같은 작품 외적인 요소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빼앗긴다”고 했다. 현 씨는 “(외부에서) 홍보하는 걸 보면 실제 작품에 비해 부풀려지기 일쑤다. 그 부풀린 말이 진짜 자기 작품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 것을 참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최근 숭숭가무단 단원들은 숭숭가무단을 다른 예술가는 물론이고 일반인에게도 개방하기로 결정했다.

“누군가가 자기가 해오던 것과 다른, 새로운 작업을 하고 싶은데 용기가 없을 때, 숭숭가무단 일원이 돼서 그 작업을 하는 거예요. ‘어떤연구소’에서는 작업을 기획하고 지원해주죠. 예술가들이 만든 기획단체가 예술가를 직접 지원한다는 게 중요해요. 그런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요.”(이말씨)

조 씨는 이를 “일종의 보호막 같은 것”이라며 “뭐든지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걸 하는, 예술가들의 ‘숭숭 운동’을 일으키고 싶다”고 했다.

이들의 목소리는 조금씩 세상의 인정을 받고 있다. 마호가니 킹은 최근 CJ아지트 신인뮤지션 발굴 프로그램 ‘튠업!’에 선정됐다. 60여 개 팀이 음반제작 지원, CJ아지트 공연기회 등을 놓고 겨룬 결과다. 제이신은 곧 정식으로 싱글 1집 앨범을 낸다.

이렇게 물방울 일곱 개는 물줄기를 이뤄 예술가들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세상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며 외치고 있다.

“지금까지의 예술은 그것이 생산되는 시스템에 부딪히고 튕겨 나오고 상처받는 일이 많았어요. 저희도, 다른 사람들도 더는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으면 해요. ‘숭숭 안에서라면 죄를 지어도 범죄자가 아니다’랄까? 그렇게 재미있게, 자유롭게 ‘지속 가능한 예술’을 할 수 있길 바라요.”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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