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강헌] 새로운 천년, 우리 노래의 정체성은?②

동아일보 입력 2010-09-20 15:10수정 2014-08-27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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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팝의 세계적 유행 속에 우리가 잊고 있던 '한국 대중음악'
●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대중음악의 선각자들…김수철과 서태지
'신중현과 엽전들'의 첫 앨범은 한국에서 록 음악과 그것의 정신이 어떻게 시작되는가를 알려주는 이정표이자 동시에 우리의 전통적인 음계와 박자가 대중음악과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준 역사적인 성과물이다.

모두 10곡에 이르는 이 앨범을 가로지르는 핵심은 다름 아닌 5음계에 입각한 신중현의 기타이다. 그의 독특하고 재기 넘치는 기타의 뉘앙스는 일렉트릭 기타 고유의 충만한 박력과 도전적인 날카로움이 아니라 오히려 가냘프게 여운을 남기고 사라져가는 해금의 그것에 잇닿아 있다. 떠들썩한 '미인'의 리듬 안엔 골계적인 '장타령'의 처연함이 드럼에 녹아들어 있고 '설레임' 속에서 조심스럽게 음계를 이어가는 기타는 거의 선(禪)적인 정숙감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 앨범의 또 다른 백미는 상여소리의 어두운 텍스트를 빌려 온 '나는 너를 사랑해'와 탈춤의 골계적 미학을 은연중에 유포하는 '나는 몰라'에서 상반되게 보여주는 진혼과 해학의 형상화일 것이다.

1974년 이 앨범의 진정한 가치는 '미인'의 틀을 이루고 있는 5음계, 그것도 트로트의 일본 요나누키적인 5음계가 아니라 전통적인 계면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5음계라는 점이다. 이것은 엔카가 물밀듯이 들어오던 시대에 안기영이 민요 채집 활동을 하면서 우리의 민요에 입각한 평조나 게면조의 음계로 현대적인 노래들을(가령 '그리운 강남'이나 '마의태자' 등) 만든 것의 역사적 후속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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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인 김수철, 그는 국악을 재발견한 대표적인 대중음악인이다(동아일보 DB)

■ 신중현과 김민기의 위대한 진보

그러나 '딴따라'라는 비어에 농축되어 있는 대중음악에 대한 이 땅의 완강한 편견은 그를 새로운 분기점을 창출한 대중음악가로 인지하는 것을 거부했으며 70년대의 정오에 터진 대마초 파동까지 겹쳐 그를 철저히 파괴시키고 만다. 그의 모든 음반은 화형에 처해졌고 그는 80년 서울의 봄이 오기까지 금치산자로서의 삶을 감수해야 했다.

그의 비극은 1971년 '아침이슬'을 담은 데뷔 앨범을 끝으로 공식적인 활동을 차압당하고 비제도권에서 탈춤과 굿, 그리고 민요의 예술정신을 추적하기 시작한 김민기의 비극과 대구(對句)를 이룬다. 김민기는 1978년 노래굿 '공장의 불빛'을 지하에서 완성함으로써 모던 포크와 구전 노래, 민요의 핵심을 망라한 깃발을 꽂는다. 그러한 그의 관점은 1995년의 문제적인 록 오페라 '개똥이'에 이르도록 면면히 녹아 흐르고 있는 것이다.

'공장의 불빛'이 불법 테이프의 형태로 대학가에 은밀히 확산되던 그 때에 대중음악계에서는 위험천만한 김민기의 작업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대담하게 제공했던 송창식이 전통음악의 문을 노크하고 있었다. 그는 아티스트로서의 그의 위상을 결정지은 78년의 앨범 속에 '토함산'이라는 실험적인 노래를 발표했으며 연이은 80년의 앨범을 통해 '가나다라'라는 전통음악과 로큰롤의 융합(fusion)을 감행한다.

'가나다라'에서 송창식이 보여준 새로운 세계는 우리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는 서구적인 의미에서의 선율적인 요소를 제거했으며(흑인들은 이 지배의 룰에 대해 랩이라는 대항체를 내지 않았던가?) 수학적으로 분할되는 리듬의 질서를 해체했다.

게다가 서구적인 발성과 토속적인 질박함이 어울린 그의 보컬은 계속하여 열린 공간을 만들어 나갔다. 82년 앨범의 '바람'과 83년의 '푸르른 날'이 보여준 시조창의 여백의 미학이나 지금의 시점에서 그의 마지막 앨범이 된 86년의 앨범에서 지치지 않고 수행한 국악적 문법을 향한 도전은 상품이라는 저주받은 운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대중음악이 성취한 소중한 기록이다.

정태춘의 1989년 작업 ''아! 대한민국''은 대중음악과 민중운동이 가장 격정적으로 만난 사례다.(사진 제공 한국문화재보호재단)

■김수철, 전통음악의 품으로 접어들다

하지만 대중음악에서 전통음악의 광활한 황무지로 나아간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우리는 김수철이라는 이름을 불러낼 것이다. 70년대 대학가의 캠퍼스 밴드 '작은 거인'의 리더로 등장하여 기타를 이빨로 물어뜯는 해프닝을 연출하는 지미 헨드릭스의 스타일을 보였던 그가 국악에 눈뜨기 시작한 것은 80년대가 개막하는 시점이었다.

그는 87년 대한민국 무용제 대상작인 '0의 세계'의 음악을 본격적인 출발점으로 하여 피리와 대금과 아쟁, 나아가 사물의 깊은 속살을 탐사하면서 기꺼이 무릎이 까져 피를 흘리고 우는 일곱 살배기 소년의 숙명을 받아들인다.

우리 것이면서 우리 것이 아닌 이 '소리'에 대한 탐닉은 바로 88년 올림픽 전야제 축전 행사곡인 '도약'과 '환희와 초월'에 이르러 한 구비를 돌게 되고, 뒤이어 망부(亡父)에게 헌정하는 89년 앨범 '황천길'의 '슬픈 소리'(신영희 창)로 하나의 산자락을 일구어 놓는다.

국악을 향한 그의 관심이 소박한 민족 회귀적 발상이나 또 하나의 새로운 것을 위한 피상적인 수용으로 그쳐버릴 수도 있는 위기의 지점에서 그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와 '태백산맥'을 통해 더욱 깊은 국악의 물줄기 속을 파고든다.

대금 독주와 신서사이저 오케스트레이션이 장엄하게 만나는 오프닝인 '산맥'이나 태평소와 피리의 음색을 철저히 계산한 '돌아눕는 산', 그리고 전통적인 타악기의 울림을 산뜻하게 재편한 '슬픈 골짜기' 같은 대목에 이르면 그가 십년 동안 추구해 온 과제가 성숙의 단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여실히 감지할 수 있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 교수와 전위 예술가 홍신자의 목소리가 만난 '미궁'을 빼놓을 수 없다. 김종원기자 wpn@donga.com

■ 황병기와 정태춘 그리고 서태지…

김수철에 못지않게 70~80년대의 중요한 성과로 우리는 가야금 주자인 황병기와 전위 예술가 홍신자의 목소리가 만난 '미궁'을 놓칠 수 없다. 곡 자체는 이미 76년에 완성된 것이지만 음반으로 발매된 것은 84년이다. 78년의 '숲'에서 93년의 '밤의 소리'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가야금의 세계를 독자적으로 개척해 온 이화여대의 국악과 교수인 황병기는 84년의 이 충격적인 작품을 통해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전위와 대중성, 고답과 첨단의 장벽을 무너뜨리며 우리 음악의 지평을 넓혔다.

황병기의 '미궁'이 고급음악계의 쾌거라면 대중음악가로 출발하여 민중의 정서와 세계관을 음악으로 드러내는 쪽으로 발전해 간 정태춘의 1989년 작업 '아! 대한민국'은 대중음악과 민중운동이 가장 격정적으로 만난 실례가 될 것이다.

그 앞의 선배들처럼 통기타의 모던 포크로 음악 이력을 출발한 정태춘은 북을 위시한 전통 악기와 만나면서 음악적 주체성의 회복과 탈정치화한 대중음악의 순응주의를 과감히 버리고 민초의 숨결을 형상화하는 데 성공한다. 그의 음악은 60년대의 대학가로부터 시작하여 80년대엔 공장으로까지 진출한 풍물과 민요의 정신을 되살려 냈다는 점에서 재삼 평가받아야 한다.

진지함보다는 새로움을, 음악적 카리스마보다는 시각적 현란함이 득세하게 되는 1990년대는 상대적으로 앞과 같은 장인들의 기백이 음악 청년들의 안무와 패션에 밀린 시대이기도 하다. 서구의 숱한 신상품들이 경쟁적으로 상륙하는 틈바귀에서 단숨에 1990년대의 총아로 부상한 서태지는 그와 그의 동료들의 1993년 두 번째 앨범에서 태평소와 사물을 랩과 메틀에 융합시킨 '하여가'를 발표함으로써 화제가 되었다.

단지 새로운 효과를 통해 이목을 집중시키려는 상업주의적 결과라는 곱지 않은 시선도 없지 않았지만 주류 시장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러한 시도를 감행했다는 것은 결코 손쉬운 일은 아니다.

비록 단 한 번의 시도로 그쳐 버렸다는 아쉬움은 남지만 서태지는 십대들의 아우성 속에서도 90년대의 서구 대중음악의 문법과 우리의 전통적인 문법이 근접 조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었다.

장사익의 천의무봉한 보컬은 우리의 민요와 서구의 악기가 독창적으로 만난 최고의 선물 이다-스포츠동아

■ 신해철과 장사익이 그린 꿈

하지만 이 계통에서 90년대의 최대의 성과를 마지막으로 지목한다면 그것은 넥스트 시절의 문제의식을 보다 심화시켰지만 시장에선 침몰한 신해철의 저주받은 1999년 앨범과 장사익의 1995년 데뷔 앨범 '하늘 가는 길'이 될 것이다.

신해철은 그가 연마해온 신서사이저의 테크노 음향과 여성의 창을 접합하여 문명 비판의 메시지를 넘어 새로운 동서 간의 다리를 놓고자 했고 사물놀이의 변화무쌍한 리듬과 메틀의 드럼라인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새로운 음악 경험의 장을 열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고 시장의 한 귀퉁이에서 시들어버릴 뻔 했다가 극적으로 구조됐던 임동창과 장사익의 혼연의 축제를 다시 한 번 주목해야 할 것이다. 기기묘묘한 피아니스트 임동창의 연주와 어울린 장사익의 천의무봉한 보컬은 우리의 민요와 서구의 악기가 독창적으로 만난 최고의 선물로 기록되어야 한다.

'찔레꽃'에서 압도하는 다이내믹한 하모니, '국밥집에서'의 자유분방한 패러디 정신, 그리고 '섬'을 통해 나타나는 질박하고도 예리한 선율과 리듬은 아직도 우리가 탐험해야 할 음악의 처녀지가 무한히 남아 있음을 반증한다.

우리의 전통음악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의 손에 의해 하관(下棺)의 운명을 강요당했다. 그리고 서구 지향의 가치 기준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음악 언어에 대한 열등의식을 심화시켰다.

이제 우리는 정통적인 전통음악계에서 그리고 서양음악의 문법에서 나아가 가장 광범위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는 대중음악에서 단순한 한의 정서가 아닌 우리 전통음악의 여백과 폭발성의 미학을 다시 복원시켜야 하는 것이다.

자, 다시 묻는다. 새로운 천년 우리 노래의 진정한 영웅은 누구일 것인가? 과연 그런 인물이 등장할 수는 있을 것인가? 신중현 혹은 송창식의 온고지신(溫故知新)과 원일의 패기만만(覇氣滿滿)과 김수철의 권토중래(捲土重來)와 신해철의 당랑거철(螳螂拒轍)이 하나의 지점에서 만나는 바로 그런 얼굴을 기대한다.
강헌 /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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