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나는 너에게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동아일보 입력 2010-07-03 03:00수정 2010-07-03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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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시간-주윤균 그림 제공 포털아트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처음 읽은 건 고등학교 시절이었습니다. 1976년에 출간된 정가 500원짜리 영한 대역판 문고본은 사춘기 소년에게 풍요로운 영감의 날개를 펴게 했습니다. 소행성 B612에서 한 송이 장미와의 관계 맺기에 실패한 어린왕자는 마음에 상처를 받고 다른 별의 세계로 순례여행을 떠납니다. 일곱 번째 별인 지구에 도착해 어린왕자는 많은 점을 경험하고 배우고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지구에 온 지 꼭 1년째 되는 날, 어린왕자는 사막에서 사라져 자신의 별로 돌아갑니다.

소행성 B612를 떠나 여러 별을 순례하는 동안 어린왕자가 가장 많이 경험했던 건 이상한 행동을 일삼는 어른의 세계였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어른을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어린왕자는 “어른들은 정말 이상해”라는 말을 되풀이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어린왕자는 드디어 일곱 번째 별인 지구에 당도하고 그곳에서 여우를 만나 ‘길들인다’는 말에 눈을 뜨게 됩니다.

여우를 처음 만났을 때 어린왕자는 자신과 놀자고 요청합니다. 하지만 어린왕자의 말에 여우는 놀 수 없다고 거절합니다. 놀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여우는 단순명료하게 대답합니다. “난 길들여지지 않았거든.” 그때부터 어린왕자는 “길들인다는 게 뭐지?” 하고 집요하게 여우에게 묻고 또 묻습니다. 어린왕자의 계속된 질문에 여우는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길들이는 과정을 통한 관계 맺기가 무의미한 존재 사이에서 아주 각별하고 특별한 존재,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 자신의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존재를 만드는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거기서 어린왕자는 자기 별의 장미와 자신이 왜 불화하게 되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관계를 맺고 길들여지는 과정은 사랑입니다. 상대방의 발소리, 숨소리, 몸짓만으로도 모든 걸 감지하고 반응하는 상태에 대해 여우는 이렇게 멋진 표현을 합니다. “가령,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벌써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네 시가 되면 난 벌써 흥분해서 안절부절못할 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알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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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는 어린왕자에게 사람은 자신이 길들인 것에 대해 영원한 책임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비밀도 가르칩니다. 여우를 통해 진정한 존재의 의미에 눈을 뜨게 된 어린왕자는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사에게 자신의 깨달음을 전합니다. 별이 아름다운 건 눈에 보이지 않는 한 송이 꽃이 있기 때문이라고,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샘을 감추기 때문이라고.

21세기, 디지털 문명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관계 맺는 일, 길들이는 일의 진정한 의미를 망각하고 살아갑니다. ‘잘 만들어진 것(well made)’이 지천으로 넘쳐나지만 진정한 관계 맺기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친구와 연인을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 같은 곳에서 구입할 수는 없습니다. 어린왕자의 마음에서 등불처럼 빛을 발하는 한 송이 장미처럼 우리도 행복한 관계 맺기, 행복한 길들이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진정한 하나의 의미가 되어야겠습니다.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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