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車 추가논의’ 카드로 FTA 비준 돌파구 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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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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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 오바마 “얍!”이명박 대통령(오른쪽)이 19일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뒤 오찬 장소인 청와대 경내 상춘재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태권도복을 선물했다. 태권도 녹색띠를 딴 적이 있는 오바마 대통령은 곧바로 정권지르기 포즈를 취했다. 이 대통령도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태권 오바마 “얍!”
이명박 대통령(오른쪽)이 19일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뒤 오찬 장소인 청와대 경내 상춘재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태권도복을 선물했다. 태권도 녹색띠를 딴 적이 있는 오바마 대통령은 곧바로 정권지르기 포즈를 취했다. 이 대통령도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한미FTA 새 국면 접어드나
“문제 있다면 들어볼 것” 美이의제기에 열린 대응
“美의회 비준 속도 내달라” MB, 구체적 시한까지 제시

《이명박 대통령이 19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 자동차 부문의 재논의 가능성을 시사함에 따라 2007년 7월 협상 타결 이후 2년여를 끌어온 FTA 비준 논란이 새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정부는 “미국 측 얘기를 한번 들어보겠다”는 수준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의회가 반대하고 있는 점을 들어 자꾸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이 대통령이 재논의라는 ‘깜짝 제안’을 내놓음으로써 교착상태에 빠진 FTA의 불씨를 되살리려 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 이 대통령, “자동차 문제 재론 가능”

이 대통령은 이날 공동기자회견에서 “미국하고 우리가 자동차 문제가 있다면 다시 이야기해보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점은 조금 전에 (단독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과도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자세가 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재협상은 없다”는 기존 방침에서 한발 물러나 추가 논의의 여지를 남겨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오바마 대통령이 단독회담에서 계속 미 의회의 얘기를 했기 때문에 그런 어려움이 있으면 (미국 측 불만을) 들어봐 줄 수 있겠다는 것이다. 그게 오늘 발언의 배경이다”라고 설명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전날 미국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미 FTA는) 미국 수출업자들에게 잠재적으로 훌륭한 협정”이라면서도 “효과적으로 다루지 않은 경제 분야가 있다. 그것을 이 대통령에게 말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따라서 두 정상 간에 자동차 재논의의 필요성에 대한 일정 정도의 공감대가 형성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한미 FTA 협정문에 따르면 한국은 협정 발효 즉시 자동차에 붙는 관세(친환경차 제외) 8%를 없애야 한다. 반면 미국은 한국에서 수입하는 자동차 중 배기량 3000cc 이하에 대해서만 즉시 관세를 없애고 3000cc 초과는 3년 안에 없애도록 하고 있다. 그만큼 미국 측에 유리한 셈이다.

그럼에도 미국은 자동차업계와 의회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FTA 협상 내용에 이의를 제기해 왔다. 한국이 보이지 않는 무역장벽을 이용해 자국 시장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은 한국에 8864대를 수출한 반면 현대·기아자동차는 지난달에만 5만3000여 대를 미국에 팔았다.

○ 정부, “한번 들어보는 수준”

정부는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재협상이나 추가협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게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혜민 통상교섭본부 FTA 교섭대표는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재협상이든 추가협상이든 협정문을 바꿀 수는 없다”며 “다만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니 가져오면 들어보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계산이라는 해석도 있다. FTA 비준이 미 의회의 반대로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는 점을 감안해 출구를 트기 위한 전술적 선택이라는 것이다. 청와대의 한 참모는 “미국에 선공(先攻)을 한 측면도 있다. 우리가 미국의 요구에 열린 자세로 대응할 테니 그쪽도 빨리 의견을 정리해 비준작업에 속도를 내라는 요구”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이 전미자동차노조(UAW) 등 노동단체라는 점에서 단순히 ‘이야기를 들어보는 수준’에 그치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오바마 대통령이 “효과적으로 다루지 않은 경제 분야가 있다”고 말한 것도 협상 내용 수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결국 그동안 정부가 다짐해 온 ‘재협상 및 추가협상 불가’ 방침이 이 대통령의 발언으로 토대가 흔들릴 소지가 크다. 자동차 문제를 건드리면 합의내용의 전반적 균형이 깨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반발도 예상된다.

○ 한미 FTA 비준은 언제

오바마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미국 내) 팀을 구성해 장애가 되는 모든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그래서 마지막 비준으로 가는 그런 여러 문제를 논의 중이다”라고 말했다.

발상의 전환도 일부 있었다고 한다. 그동안 미 의회는 아시아와의 무역적자를 지적하며 한미 FTA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지만 이 대통령은 한국만 따로 떼 놓고 보면 무역 불균형 논란을 불식할 수 있다는 점을 주지시켰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미국에서 우려하는 부분은 (아시아 국가와의) 엄청난 무역 불균형이다. 이런 무역 불균형은 한국과의 관계에서는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지만 모든 아시아를 한꺼번에 묶어서 보는 그런 관행이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당국자는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FTA의 효과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선) 언제까지 비준이 됐으면 좋겠다며 특정 시점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가 FTA 비준을 추진하려면 먼저 건강보험 개혁이 결론 나야 한다. 그런데 내년 11월이면 미국 중간선거 기간이어서 내년 상반기를 넘기면 미 민주당 지도부는 한미 FTA처럼 상당수 의원이 꺼리는 사안을 밀어붙이기가 어렵다. 이렇듯 미국 측 정치일정이 빠듯하고 불투명한 상황이어서 자동차 문제 등 숙제를 미리 해놓으려면 논의의 물꼬를 터야 한다는 필요성도 제기돼 왔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변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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