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반병희]제한된 합리주의와 위기극복

  • 입력 2009년 2월 23일 02시 54분


불황이라고 사람 먼저 자르는 기업이 있다. 이런 회사는 경영의 단수를 놓고 보면 ‘하수(下手)’에 속한다. 인력 구조조정은 단기적으로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다.

지식기반 경제 시대에 사람은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비용 절감 못지않게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강화, 성장 기반 확보도 대단히 중요한 경영 목표다. 무차별적 인원 감축은 경쟁력 강화나 성장 기반 확보에 도움이 안 된다. 불황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어렵다고 감원의 칼을 빼든 기업들 가운데 상당수는 훗날 찾아온 호황기에 경륜과 지식을 갖춘 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외환위기 이후 많은 한국 기업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인력 감축은 절대 없다’고 선언하는 경영자는 어떤 평점을 받을 수 있을까. 앞서 언급한 부작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하수’다. 조직 변화의 논리를 잘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직이 변하려면 비전이나 미션, 변화의 방향 등을 적절하게 설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위기의식의 공유(共有)다. 아무리 좋은 목표와 비전을 갖고 있는 조직이라도 위기의식이 없다면 변화는 공염불에 그친다.

노벨상 수상자인 허버트 사이먼 박사의 지적대로 인간은 태생적으로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을 가진 존재다. 주류경제학은 인간을 합리적이라고 가정하지만 현실에서 인간은 제한된 범위에서만 합리적이다. 일반 기업의 예를 들자면 조직 전체, 나아가 중장기적으로는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오는 일일지라도 당장 기분에 거슬리면 반대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조직원들의 일반적인 생리다.

이처럼 인간은 감정적이며 때로는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하기 때문에 조직 변화를 추진하는 현명한 경영자들은 조직원들에게 위기의식부터 불어넣는다. 위기의식을 공유하면 당면한 문제 해결을 위해 조직원 모두의 지혜를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후 금 모으기 운동 등을 벌이며 전 국민이 단결된 모습을 보였는데, 만약 위기의식이 없었다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최근 필자가 만난 한 대기업의 경영자는 “인력 감축이 없다는 선언을 한 후에 직원들이 실망스러울 정도로 느슨한 태도를 보인다”며 한탄했다. 경제위기의 한복판에서 사활을 걸고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경영자로서는 복장이 터질 일이다. 하지만 제한된 합리성이란 측면에서 보면 이런 직원들의 태도는 당연히 예상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현명한 경영자는 인력 감축이 없다는 선언을 하기 전에 냉혹한 현실부터 설명한다. 외부 환경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이런 변화로 인해 내부적으로 어떤 위험이 닥쳐올 것인지 솔직하게 고백한다. 또 중간 간부들을 거쳐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고 리더가 직접 조직원들에게 위기를 호소해 강도 높은 자극을 주기도 한다.

지금 같은 총체적 위기 상황에서 이성에 위기를 호소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직원들의 감성을 자극해야 한다. 경영 방침을 신뢰하고 마음속 깊이 위기의식을 가진 직원이 많아질수록 구성원들은 위기 극복을 위한 일에 서슴지 않고 행동에 나선다. 왜 이번에는 이기적인 행동을 하지 않느냐고? 인간은 제한된 범위에서만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반병희 산업부장 bbhe4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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