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숭례문 화재 1년’에 만난 이건무 문화재청장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월 29일 02시 58분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산불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는다”며 “숭례문 복구 공사를 통해 문화재 복원의 원칙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산불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는다”며 “숭례문 복구 공사를 통해 문화재 복원의 원칙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국보 1호, 신축이 아니라 기록에 근거해 복구”

《어디서 산불이 났다는 소식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했다. 지난해 설 연휴 마지막 날인 2월 10일 국보 1호 숭례문이 불탄 직후인 3월에 취임해 사태 수습으로 정신없었던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지금도 불이 가장 무섭다”고 말했다. 숭례문 화재 1년을 맞아 서울 경복궁 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이 청장을 만난 23일도 화재가 이 청장의 애를 태웠다. 이날 마애불이 모여 있는 경북 경주시 단석산에서 산불이 났다. 다행히 산불이 잡혀 문화재는 피해를 보지 않았고 이 청장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실측보고서-사진 등 풍부… 옛 부재 최대한 활용

문화재 가치 교육과 함께 화재예방 캠페인 벌일것


이 청장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뚜렷한 기준이 없었던 문화재 복원의 원칙을 숭례문 복구공사를 통해 천명하겠다”며 “숭례문을 단순히 21세기 건축물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도면과 사진, 기록 등 분명한 근거에만 의지하겠다”고 말했다. 이 청장은 또 숭례문의 불탄 부재(部材)를 포함해 숭례문 역사를 보여주는 ‘숭례문 전시관’은 숭례문 인근에 건립돼야 한다고 했다. 숭례문 화재 이후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장소를 협의하고 있지만 숭례문 주변이 빌딩 숲이라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청장은 “빌딩 내로 전시관이 들어가더라도 전시관에서 숭례문을 한눈에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취임 이후 숭례문 화재 수습이 가장 큰 과제였다.

“화재 때는 숭례문이 국보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지만 취임 뒤 보니 2층 누각만 전소됐고 대부분 살아 있었다. 숭례문 실측보고서, 수리보고서, 사진자료가 풍부해 국보 유지에 문제가 없을 것이다. 석축도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여 석축 해체를 전제로 예상한 완공시기(2012년 12월)보다는 앞당겨질 것 같다. 숭례문은 화재 이전 모습으로 복구하지만 일제강점기 사진을 면밀히 분석해 일제 때 훼손된 부분도 함께 복구하겠다.”

―불탄 부재 실측 현장을 보니 부재 하나하나에 들이는 정성이 대단하다.

“숭례문이 600년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여러 번 수리하면서도 처음 축조할 때 수법으로 맥을 이어온 덕분이다. 부재가 타버렸다고 다 새로 쓰면 맥이 끊어진다. 숭례문 복구에 사용하는 부재는 바꿔서 새로 써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을 때만 교체하고 최대한 옛것을 활용할 계획이다. 가장 많이 오해하는 부분이 ‘새로 짓는’ 게 문화재 복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술품의 단순한 모사는 감명을 주지 못한다. 여전히 문화재 복원에 원칙이 부족한데 숭례문 복구를 위해 정확한 기준을 제시하겠다.”

―전국에서 숭례문 복구에 쓸 소나무를 기증하는 등 관심이 높았다.

“작고한 문화유산 사진작가 김대벽(1929∼2006) 선생의 장남인 김일석 목사에게서 고인이 찍은 숭례문 내부 컬러사진 여러 점을 기증받은 것이 기억에 남는다. 화재 전 숭례문 내부 사진이 흔하지 않아 유용한 고증 자료로 쓰일 것이다. 화재 직후보다는 국민적 관심이 떨어졌지만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차분해졌다고 믿는다. 숭례문 복구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지 관심이 지속될 것이다. 발굴 과정, 목재를 깎고 다듬는 작업을 다 보여주겠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산불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는다”며 “숭례문 복구 공사를 통해 문화재 복원의 원칙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산불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는다”며 “숭례문 복구 공사를 통해 문화재 복원의 원칙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숭례문 복구와 목조문화재 방재시스템 구축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나.

“숭례문 복구단 인력이 본래 업무도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계획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예산이 기대만큼 늘지 않았지만 예산 확보가 금방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숭례문 복구는 서두를 것이 아니라 철저해야 한다. 목조문화재 방재시스템 구축은 지난해 중요 목조문화재 131곳 등 모두 354곳을 선정해 139억 원(지방비 69억5000만 원)을 편성했지만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확보가 늦어져 2007년 예산이 편성된 강원 양양군 낙산사와 전남 강진군 무위사 외에는 구축을 완료하지 못했다. 올해부터 늘어날 것이다. 목조문화재의 경비 인력 배치도 거의 마무리했다.”

―숭례문 화재 이후에도 문화유산 자체에 대한 관심은 크게 늘지 않은 것 같다.

“문화재의 가치를 국민에게 적극 홍보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문화재의 소중함을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도록 교육과학기술부와 협의하겠다. 또 2월 10일에 맞춰 목조문화재 방재훈련 행사를 여는 등 목조문화재 화재 예방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이건무 청장

△1947년 서울 출생 △1969년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졸업 △2002년 고려대 대학원 박사 △1973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1993∼1998년 국립광주박물관 관장 △2003∼2006년 국립중앙박물관장 △2006∼2008년 용인대 문화재보존학과 교수 △주요 발굴 서울 강동구 암사동 신석기 유적, 충남 부여군 송국리 청동기 유적 등 △논문 및 저서 ‘한국식 동검(銅劍)문화의 연구’ ‘청동기 문화’ ‘선사 유물과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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