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정화]‘中企구하기’ 정부 나설 때

  • 입력 2008년 9월 27일 03시 00분


고유가, 고원자재가, 고환율의 3중고에 시달리면서 중소기업의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고환율은 환헤지를 하려고 통화옵션상품 키코(KIKO)에 가입한 중소기업에 치명적인 위험이 되고 있다. 피해액이 1조6000억 원대이며, 원-달러 환율이 1200원이 되면 열에 일곱은 부도가 예견된다. 키코에 가입한 중소기업의 대다수가 유동성 부족으로 흑자 도산의 위험에 빠져 있다. 중소기업의 경영난이 예견되자 은행은 신규대출을 억제하거나 기존 대출을 회수하는 등 자체 리스크 관리에 나섰다. 이런 상태가 방치되면 중소기업의 줄도산 우려가 높다. 정부의 긴급한 대책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유가-고원자재가-고환율 3중고

자유주의 시장경제에서 기업은 자기책임하에 의사결정을 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유가상승, 원자재 가격이나 환율 변동에 대응하는 것도 기업의 자유 의사결정이고 이익과 손실에 대한 책임도 스스로 지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따라서 최근 사태에 정부가 개입해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의 타당성은 미약하다. 그러나 원칙만을 주장하기에 현재 상태가 매우 심각하며 이를 기업의 책임으로만 미루고 수수방관하기에는 부정적 파급효과가 우려된다.

기업이 환헤지를 위한 파생상품에 가입한 것은 환경 불확실성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합리적 행동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매우 불합리한 결정이 되고 말았다. 일부 기업은 무리하게 투기적 행태를 보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합리적 목적하에 은행의 권유로 가입했다. 환율이 예상을 넘어서게 되자 엄청난 재앙이 닥치게 됐다.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고 수출을 활발하게 하면서 건전하게 경영되던 기업이 하루아침에 위기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은 불타는 집과 같은 형국이다. 정부는 화재의 원인이 방화이든지 실화이든지 관계없이 우선 불을 끄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중소기업은 거래기업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을 고용하고 있으므로 집단적으로 무너지면 부정적 파급효과가 증폭될 수밖에 없다. 신속하게 초기 진화를 하는 것이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다.

환헤지 계약을 해지하도록 허용하고, 은행의 대출연장이나 신규대출, 특별 보증 같은 수단을 동원하여 유동성 위기를 넘기도록 해야 한다. 기업에 위기가 닥쳐오면 신규대출을 중단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존 대출마저 회수하는 은행의 행태는 맑을 때 우산 빌려주었다가 비 오면 거둬들이는 행태와 마찬가지다. 기업 스스로 비가 오는 데 대비하면서 경영을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갑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지는 경우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급작스러운 위기상황 공동대처를

현재 국내 중소기업은 사면초가의 상황에 처해 있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경우 원가 인상 요인을 모두 흡수하면서도 끊임없는 단가 인하 압력에 시달린다. 불리한 거래조건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급작스러운 유동성 위기는 치명타가 되고 있다. 중소기업이 어려우니까 무조건 도와야 한다기보다 급작스러운 위기상황에 공동 대처하는 방안을 찾자는 의미다. 10년 전 외환위기 시에도 정부의 적극적인 신용보증을 통해 위기를 넘기고 오늘날 중견기업으로 발전한 기업이 다수 있다.

어떤 기업에 어떤 조건으로 지원하는가는 관련 기관이 모여 합리적인 기준을 정해야 한다. 공정성과 형평성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하며, 개별 기업의 책임도 명확하게 해야 한다. 현 사태는 중소기업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시험대일 뿐 아니라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시험 기회이기도 하다. 신중하게 하되 시기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한정화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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