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원재]速度경쟁력

  • 입력 2008년 3월 15일 02시 49분


“1980년대가 질(質)의 시대, 90년대가 리엔지니어링의 시대라면 2000년대는 속도의 시대가 될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회장은 저서 ‘생각의 속도’에서 21세기 기업의 성패는 스피드가 좌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디지털시대에는 비즈니스도 ‘생각의 속도’로 운영돼야 한다”는 것이다. 시스코시스템스의 존 체임버스 회장은 “덩치가 큰 기업이 항상 작은 기업을 이기는 것은 아니지만, 빠른 기업은 언제나 느린 기업을 이긴다”고 갈파했다.

▷기업들은 시장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반 발짝이라도 뒤처졌다가는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삼성전자가 기술력에서 한참 앞선 일본 소니를 앞지른 것도 속도 경쟁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경영진의 신속한 의사결정이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와 맞물려, 내부 합의와 조정의 전통이 강한 일본 업체를 추월했다는 것이다. 도요타자동차가 세계 자동차업계 정상에 등극한 것도 속도 경쟁력 덕이다. 신차 개발에 걸리는 기간이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는 34∼38개월이지만 도요타는 평균 18개월이다.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가 그제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첫 회의에서 통상 2∼4년 걸리는 산업단지 인허가 기간을 6개월 이내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첫 모임부터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한 것은 평가할 만하지만, 기업경영과 세계경제 변화의 스피드를 감안하면 아직도 느리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폭넓고 강도 높게, 그리고 속도를 높여 규제를 털어내도 갈 길이 먼 우리 경제다.

▷민간을 규제로 옭아매는 데 익숙한 한국의 관료 조직에 지금 당장 민간 수준의 속도를 요구하는 건 무리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두바이, 싱가포르 같은 경쟁국 정부와의 스피드 경쟁에서 이기려면 지금 같은 속도로는 어림없다. 새 정부의 경제 살리기 드라이브를 주도할 국가경쟁력강화위가 처음부터 고삐를 죄고 악성(惡性) 규제부터 속도감 있게 철폐해 나가야 한다. 속도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다. 정부 사람들은 그저 장시간 근무하는 것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더 빨리 생각하고, 더 빨리 결단하고, 정책을 더 빨리 현장화(現場化)하는 것으로 승부를 걸 일이다.

박원재 논설위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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