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상영]바다에도 전봇대가 있다

  • 입력 2008년 3월 13일 03시 03분


전남 완도 옆에 신지도라는 작은 섬이 있다. 은빛 백사장이 3.8km나 이어진 명사십리 해수욕장으로 알려진 곳이다. 뛰어난 환경을 갖췄는데도 몇 년 전까지 찾아오는 해수욕객이 연간 평균 7만 명 정도에 불과했다. 숙박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전남도가 임시방편으로 몽골텐트를 설치하자 당장 관광객이 15만 명으로 늘어났다. 이어 완도와 다리로 연결되자 재작년 65만 명, 작년에는 98만 명이 찾았다. 리조트시설이 들어선다면 관광객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천혜의 관광자원 규제로 발 묶여

그나마 신지도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진도에 딸려 있는 관매도는 신지도 못지않은 백사장과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지만 관광객이 거의 없다. 주민도 계속 줄어 과거 3000명이 살았다는 이 섬에는 지금 300명 정도만 남아 있을 뿐이다.

관광지로 유명한 홍도에는 11개의 모텔이 있지만 정식으로 허가받은 곳은 1개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무허가로 지어 영업을 하고 있다. 홍도의 전체 건물 가운데 78%가 불법 건축물이다.

이 섬들을 옥죄는 ‘원흉’은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지구’다.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 건물이 낡아도 개보수할 수 없다. 농기계 이용도로마저 낼 수 없으니 주민이 떠난다. 심지어 조상의 묘를 제대로 돌볼 수도 없다. 경관이 아무리 좋으면 뭘 하나. 잘 곳이 없으니 관광객이 찾지 않는다. 이런 섬이 부지기수다.

본보가 기획한 시도지사 인터뷰에서 전남지사와 경남지사는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김태호 경남지사는 “남해안은 이중 삼중으로 규제망이 촘촘하다”면서 “잠재력이 큰데도 지금은 도지사가 돌 하나도 움직이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했다. 박준영 전남지사 역시 “천혜의 관광자원이 널려 있으나 아무것도 못 하는 곳이 너무 많다”면서 “해상국립공원이라 해도 사람이 살게 해줘야 할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기획재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올해 업무보고에서 수도권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할 방침을 밝혔다. 무한 글로벌경쟁 시대에 수도권을 묶어놓고는 제대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없기에 취해지는 조치다. 수도권 규제를 언제까지나 유지할 수는 없다는 데는 본보와 인터뷰한 시도지사들도 대부분 동의했다.

그런데도 그들이 반발하는 것은 중앙정부의 지방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다도해에는 모텔 하나 지을 수 없는 규제가 엄존하는데 수도권에 또다시 혜택을 준다고 하니까 화가 나는 것이다. 올해 재정부 업무보고에서도 지방에 대한 언급은 광역경제권 발전계획을 6월 말까지 만들겠다는 한 줄에 불과하다.

설사 전국에 똑같은 조치를 취하더라도 수도권과 지방에서 나타나는 효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재정부는 한계농지와 보전산지에 대한 규제를 풀어 산업용지 및 택지 공급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 조치가 취해지면 수도권의 한계농지에는 앞 다퉈 공장이 들어서려 할 것이다. 공장용지로 전환되는 순간 막대한 땅값 상승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수도권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방의 한계농지는 그대로 버려진 땅으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공장을 유인할 만한 인센티브가 약하기 때문이다.

지방규제도 합리적 조정 필요

관광은 매년 경상수지에서 큰 폭의 적자를 내는 취약산업이다. 그렇다고 외국인이 한국에서 즐기거나 볼 것이 별로 없다고 한탄만 해서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 눈을 지방으로 돌려보면 괌이나 사이판에 가지 않아도 될 만큼 좋은 자연환경을 가진 곳이 하나 둘이 아니다. 문제는 개발을 원천 봉쇄하고 있는 중앙정부의 규제다. 이런 규제만 합리적으로 조정해도 지방에는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것이다.

공장의 생산 활동을 불편하게 하는 것만 전봇대가 아니다. 주민 생활을 불편하게 하는 전봇대가 너무 많다. 경관이 빼어나다고 해서 지정한 해상국립공원에 대해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봉쇄해 놓으면 이건 정책도 아니다. 외국 관광객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주민들이 먹고살게는 해줘야 할 것 아닌가.

김상영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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