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홍규]‘낮춤’과 ‘비움’으로 가시밭길 헤쳐라

  • 입력 2008년 3월 7일 02시 46분


서설(瑞雪)이면 길조라 하던가. 이명박 정부의 출범 첫날 하얀 눈이 세상을 덮었다. 건국 60년이 되는 해에 출범하는 정부이니 국민의 기대가 더 커 보인다. 더구나 그동안 국민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정부를 대체하는 것이니 조금만 잘해도 빛이 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에 주어진 환경은 실로 쉽지 않아 보인다. 연초부터 죄어드는 세계경제 환경은 물론이거니와 국내 환경 또한 녹록지 않다. 대부분의 정책변수가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상반관계 속에 놓여 있다.

새 정부 해결할 과제 산넘어 산

우선 경제면에서 보면 유동성과 성장률에 놓인 상반관계를 풀어야 한다. 과거의 성장 촉진정책을 답습하면 수백조 원에 달하는 과잉 유동성의 화약고를 건드리게 되어 있다. 부동산과 물가가 뛰어 그대로 서민의 아우성으로 연결될 것이다. 그렇다고 규제를 완화하고 기업가 정신을 고취시켜 성장을 도모하는 일은 그 방향은 맞지만 아마 임기 내에 그 효과를 보기는 힘든 정책일 것이다. 더구나 기업이 본격적인 투자를 하려면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확신이 서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기업은 지금 넛크래커 구조 속에 있고, 노동집약적 기술개발은 할 수 있으나 ‘구글’ 같은 혁신적 모델을 만들어낼 역량은 부족하다.

노사문제 또한 노동시장 유연성과 경영 투명성의 상반관계 속에 있다. 정리해고를 쉽게 하려면 노조가 이야기하는 비자금, 분식회계 같은 기업주의 약점에 대한 해결책도 나와야 하나, 해답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외교의 기저에도 그 상반관계는 존재한다. 북한을 놓고 벌이는 내부적 정체성과 대외적 유연성의 긴장이 지속될 것이다. 친미는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북한에 대한 우리 자신의 레버리지 역량 없이는 북-미 관계에서 우리의 목소리는 힘을 잃을 것이다.

복지 분야는 어떤가. 최대의 복지가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란 말은 맞지만, 이미 성장의 고용창출 계수는 빠르게 낮아지고 있고, 혁신은 혁신수용 가능 집단과 불가능 집단을 명확하게 가르고 있다. 양극화가 커질수록 분배 압력은 커질 것이고, ‘고기’를 주기보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하나 그 교육 시스템은 매우 낙후돼 있다.

그러면 이 모든 짐을 걸머지고 있는 정부시스템은 어떤가. 숭례문 화재가 보여주는 것처럼 규제완화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도 상반관계가 존재한다. 시스템이 부재인 상태에서 섣부른 규제완화는 재앙으로 연결되기 쉽다. 정부규제의 주 원천인 생활안전, 환경안전 시스템은 취약하기 한량없고, 현장은 책임회피와 나태로 물들어 있다.

규제는 개혁돼야 하지만, 시스템의 취약성을 강력한 규제가 보완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더구나 우리의 일머리 문화는 실질보다 형식을 챙기고, 옳은 일 하기보다 열심히 하기를 중시하는 문화이니 시스템이 쉽게 개선되기도 어렵다.

첨예한 갈등, 중용으로 풀어야

우리의 지도자는 이런 상반관계의 어려움 속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그 선택에는 다양한 계층과 집단의 긴장과 갈등이 존재한다. 그러기에 정책과 정치, 실용과 가치의 만남이 필요하다. 그 길은 중용에 있다. 중용이란 때와 상황에 딱 들어맞는 ‘시중(時中)’의 지혜를 의미한다. 그런 지혜는 ‘낮춤’과 ‘비움’에서 온다.

짐 콜린스가 지도자의 능력으로 겸손을 꼽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장관들의 청문회를 보며 국민이 특히 실망하는 것은 후보들이 내뱉는 해명의 말에 그런 것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장관들은 무엇이 국민을 섬기는 것인지를 깨달아야 난마처럼 얽힌 문제들을 풀 단초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5일에 내린 서설을 진정한 선진화의 서설로 만들 그런 지혜를 국민은 원하고 있다.

이홍규 한국정보통신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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