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혁]‘목포 시민’ 임태희

  • 입력 2008년 3월 6일 03시 00분


목포 유달산을 오르다 보면 중턱 조금 위쯤에 노래비가 하나 서 있다. 가수 이난영(1916∼1965)이 부른 ‘목포의 눈물’ 기념비다. 목포가 고향인 이난영만을 추억하는 노래비가 아니다. 작곡가 손목인(1913∼1999) 선생을 기리는 노래비이기도 하다. 손목인은 경남 진주 사람. 1989년에 목포 명예시민이 됐다.

서울 사람들에겐 명예시민이라고 해 봐야 특별한 느낌이 없을 것이다. 명예 서울시민이 575명이나 되니…. 하지만 목포는 모두 7명이다. 받은 순서대로 옮기면 일본 벳푸 시장, 손목인 선생, 김동섭·김수자 부부, 이한빈 전 경제부총리, 그리고 임태희 한나라당 의원이다. 작년에 오승우 화백이 명예시민증을 받았다. 아무에게나 시민증을 주지 않는다는 예향(藝鄕)의 자존심 같은 게 느껴진다. 흥미로운 건 다섯 번째 명예시민, 임 의원이다.

대통령 탄핵 역풍 속에 치러진 2004년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참패했다. 광주에선 정당 득표수가 720표에 불과했다. 후보와 정당에 각각 투표하는 1인 2표제의 영향도 있었다. 그러나 투표에 참가한 유권자가 58만5716명. 아무리 영호남 지역구도라 해도 720표는 충격적인 결과였다. 박근혜 대표는 이렇게 호소했다.

“지금같이 지역으로 갈라져서는 미래가 없다. 국민이 화합하지 않고는 경제회생이나 국가발전이 있을 수 없다. 하나 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최악의 노조파업으로 영국이 갈가리 찢길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엄습하던 1979년, 당시 야당인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 당수가 “다시 하나의 국민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호소하던 장면을 연상케 했다. 여하튼 이때부터 한나라당의 ‘서진(西進)’이 시작된다.

당내에 지역화합발전특위가 구성됐고, 부산 출신이지만 오랫동안 영호남 민간교류 회장을 지낸 정의화 특위 위원장은 “위원 전원이 호남을 대표하는 한나라당 국회의원이라는 각오를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 경기 성남시 분당이 지역구이고 목포와 아무런 인연이 없는 임 의원이 ‘호남에 제2의 지역구 갖기 운동’을 주도한 것도 그런 노력 가운데 하나였다.

2002년 대선 패배 후의 천막당사 시절에 이어 이즈음 한나라당의 서진 노력엔 나름대로 ‘진정성’이 배어 있었다. “2005년 목포시 의회를 처음 찾았을 때 시의원들의 냉소적 시선이 눈에 선하다. 하지만 지금은 상의할 일이 있으면 나에게 달려온다. 정치적 필요에 의해 다가갈 게 아니라 진정성을 더 보여 줘야 한다.”(임태희, 2007년 2월 신동아 인터뷰)

얼마 전 만난 정종득 목포시장도 “(임 의원을) 1년 정도 홍보대사로 위촉해 지켜봤는데 열심이었다. 그래서 명예시민으로 모셨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다음 날인 2월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신(新)발전지역 특별법’ 제정안이 통과됐다. 목포를 비롯한 서남권 발전계획 지원법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지만, 정 시장은 “이명박 당선인 비서실장을 지낸 임 의원의 도움도 컸다”고 했다.

후배는 어제 바로 이 칼럼 난(欄)을 통해 요즘의 공천 풍경을 소개하며 “도대체 정치가 뭐기에…”라고 혀를 찼다. 공감한다. 다만 ‘목포와 임태희의 만남’ 같은 풍경도 있더라는 얘길 전해주고 싶다. 지금은, 그리고 앞으로는 모르겠지만.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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