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공종식]평양의 미풍과 베이징의 개벽

  • 입력 2008년 3월 6일 03시 00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과연 5년 만에 방문하는 평양은 얼마만큼 변해 있을까?’

기자는 지난주 미국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평양 공연을 취재하러 북한을 방문했을 때 이런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 5년 전인 2003년 정주영체육관 준공식을 취재하러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가장 큰 변화는 인터넷 등 통신환경이었다. 북한은 80여 명에 이르는 외국 취재진을 위해 평양 양각도 호텔에 프레스센터를 설치했다.

인터넷은 비록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지만 기사를 송고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영어 구사가 가능한 북한 전산요원은 24시간 대기하면서 도움을 줬다.

어떤 미국 기자는 전화로 생방송을 하면서 “여기는 평양입니다. 국제전화로 은둔의 나라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할 수 있다니 놀랍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기자도 교환원을 거치지 않고 서울에 있는 본사와 직접 통화를 하면서 감회에 젖었다. 5년 전, 국제전화는커녕 서울에 돌아와서 기사 송고를 해야 했던 사실을 떠올리면 큰 변화였다.

호텔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휴대전화를 대여해 주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었다. 외국인 전용 호텔 객실에선 영국 BBC, 일본 NHK, 중국 CCTV도 시청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관광철인 4월이 되면 중국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온다는 게 호텔 관계자의 전언이었다.

호텔에서 체크아웃 할 때 인터넷과 전화 사용 명세서를 HP 프린터로 깔끔하게 프린트해 주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5년간의 변화’는 그게 다인 듯했다. 황량한 겨울 산하, 자동차 통행이 드문 거리, 여전히 북측 안내인의 통제하에서만 평양시민 접촉이 가능한 철저한 통제 사회, 땔감용 나무를 지고 가는 행인들, 거리 곳곳의 혁명 구호….

한 외국기자는 “교통 신호등이 없는 거리는 처음 봤다. 초현실적인(surreal) 도시다”라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노동신문도 5년 전과 똑같았다. 한 외국인 기자는 지난달 27일자 노동신문 톱기사 제목이 ‘선군정치는 주체승리의 확고한 기초’라는 사실을 전해 듣고 “기사가 아니고 사설 제목”이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같은 평양 표정은 평양행 특별기를 타기 위해 10년 만에 다시 들렀던 중국 베이징(北京)과는 사뭇 대조되는 풍경이었다.

베이징 시내엔 이제 세계를 주름잡기 시작한 중국 회사들의 첨단 사옥과 고급 호텔, 고층 아파트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시내 곳곳에서는 여전히 각종 공사가 계속되고 있었다.

현대자동차와 도요타는 물론 벤츠 렉서스 등 고급 외제차가 숱하게 거리를 누볐다. 10년 전엔 베이징 시 외곽을 벗어나면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차가 덜컹거렸지만 그 사이 새로 닦은 도로는 승차감이 미국 고속도로 못지않았다.

인기 있는 식당은 번호표를 받고 1시간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중국의 경기 활황세도 예사롭지 않았다. 베이징에서 느낀 ‘10년간의 변화’는 평양에서 느낀 ‘5년간의 변화’에 비해 20배, 아니 200배는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세계로 약진하는 중국과 아직 고립 상태에 있는 북한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이 같은 변화의 격차를 낳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5년 뒤 다시 평양을 찾는다면 “와, 엄청나게 변했네”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마음속으로 거듭 소망해 본다.

공종식 뉴욕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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