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동성]현장중심주의로 富이룬 나라들

  • 입력 2008년 3월 1일 03시 01분


지난 2000년 동안 세계를 지배하던 주요 국가에서 그 나라 사회를 이끌어간 조직을 보면 재미있는 패턴이 나타난다. 국가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첫 천 년에 종교적 성향을 가진 집단이 국가를 지배했다면, 두 번째 천 년에는 장군이 이끄는 군대가 지배했다. 8년 전에 시작한 세 번째 천 년에는 종교집단과 군대에 이어 새로운 조직이 사회를 지배할 조짐이 보인다. 그것은 바로 기업이다.

21세기에 떠오르는 기업형 국가

기업은 1602년 네덜란드에서 설립된 동인도회사가 효시라고 하지만 본격적인 역할을 하게 된 것은 19세기 중반이다.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이 불과 100여 년밖에 안 된 신생 집단인 기업의 역할은 가공할 만하다. 나라를 불문하고 전체 일자리의 반 이상을 제공하고, 세금의 3분의 2 이상을 납부한다. 기업을 이끄는 최고경영자는 젊은이들의 우상이 됐고, 기업을 연구하는 학문인 경영학은 미국의 경우 전체 대학생의 4분의 1이 전공하는 최대 학문이 됐다.

이런 역사적 맥락 아래서 국가를 이끌어 나가는 방법을 종교나 군대가 아니라 기업 경영 방식에서 찾는 기업형 국가가 하나 둘 나타나고 있다. 싱가포르 덴마크 아일랜드 그리고 최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이르기까지 이들 국가는 실험단계를 지나 확실한 실적을 바탕으로 다른 국가에 기업형 국가 운영 방식을 전파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동아일보가 시리즈로 보도한 ‘기업형 국가에서 배운다’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최근에는 성공한 기업 경영자가 국가적인 지도자로 등장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를 비롯해서 미국 뉴욕의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 우리나라의 이명박 대통령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신정부는 ‘기업형 국가 모델’을 따르겠다고 하고 있다. 여기서 기업형 국가 모델은 경영자만 생각하고 종업원을 생각하지 않는 ‘기업가형 국가 모델’이 아니라, 기업을 구성하는 주주와 경영자, 근로자, 더 나아가 채권자와 구매자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모델로서 ‘시장형 국가 모델’과 일치하는 개념으로 이해하자. 기업형 국가 모델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첫 번째는 인력의 조달이다. 기업 경영자는 사람의 배경이나 성향을 따지지 않고 능력과 업적을 기준으로 해서 유능한 인력을 확보하고 활용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기업 외부인력을 스카우트해 오기도 한다. 기업형 정부도 마찬가지로 5000만 국민 중에서 뛰어난 능력과 검증된 실적을 바탕으로 뽑은 인재를, 그리고 유능한 해외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두 번째는 조직의 재구성이다. 오늘날 기업은 꽃게형 조직에서 영덕게형 조직으로 모두 바뀌었다. 즉, 본부의 기능은 정보기술(IT)을 활용해서 최소한으로 줄이고 현장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정부의 경우에도 중앙정부의 조직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현장 특히 국민과 기업을 위한 서비스형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직을 변화시켜야 한다.

정부 시스템 시장과 함께 가야

세 번째는 시장의 활용이다. 시장을 거역하는 기업은 멸망한다. 마찬가지로 정부도 시장을 거스르지 말고 시장을 이해하며 따라야 한다. 정부가 특정 산업과 기업에 대한 지원을 해야 하는 경우, 정부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특히 직접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 지원 정책은 행정편의를 제공하거나 조세를 감면하는 등 다른 정책을 써본 뒤 마지막으로, 막다른 골목에 처할 때 쓴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금융 지원은 단기적으로 직접적인 효과가 나는 동시에 시혜적 성격이 가장 크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 메커니즘을 교란하는 나쁜 정책이기 때문이다.

신정부가 이 같은 조건들을 갖출 때 우리나라는 기업형 국가로 우뚝 선 세계적 모델이 될 것이다.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 교수·지속경영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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