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영아]하향평준화 교육정책 이젠 바꾸자

  • 입력 2007년 12월 17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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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공개한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 결과 한국 고교생의 과학 분야 순위가 조사 대상 57개국 중 2000년 1위, 2003년 4위에서 2006년 11위로 추락해 큰 충격을 주었다.

과학 과목의 성취도가 지속적으로 떨어진 것은 7차 교육과정 때문이라는 분석이 교육 현장과 학계에서 나온다. ‘자율과 창의에 바탕을 둔 학생 중심 교육과정’을 표방한 선택과목 중심의 7차 교육과정이 도입되면서 중1과 고1 학생의 경우 과학수업이 주당 4시간에서 3시간으로 줄고 과학 교과 내용도 30%가량 줄었다. 또 고교 2, 3학년의 선택과목군을 과학·기술군으로 묶어 운영해 과학 과목이 홀대를 받아 온 것도 과학 교육 약화의 한 원인이다. 과학 과목에서 선택과목의 무분별한 증가는 다수 학생이 선택한 과목만 개설되므로 되레 학생의 교과 학습권 및 선택권이 박탈됐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물리 과목의 경우, 화학이나 생물에 비해 적은 수의 학생이 선택한다는 이유로 아예 대부분의 고등학교에 개설조차 돼 있지 않다. 이공계의 기반이 되는 물리 과목이 단지 입시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이렇게 등한시된다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이공계 인력의 공급이나 과학기술의 발전을 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수년 동안 물리학계를 비롯한 과학계에서는 과학교육 강화를 주장하며, 7차 교육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정을 요구했으나 반영되지 않았다.

비단 과학 교육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등급제 수능은 또 어떤가. 중등교육 정책과 대학입시 정책은 당초 의도와는 달리 교육 현장의 혼란과 부작용을 초래했다. 이를 개선하려면 그 원인의 정확한 진단이 선행돼야 한다. 필자는 1977년부터 시작된 고교평준화 제도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본다. 이 제도를 고수하기 위해 교육 당국이 내놓은 갖가지 대책은 근본 해법이 되지 못한 채 교육 현장의 문제를 점점 더 꼬이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하향평준화를 가져왔다고 본다.

학생들의 수학능력 수준을 감안한 수준별 학습을 실시함으로써 대부분의 학생이 자기의 희망과 수준에 맞는 교육을 받고, 이를 바탕으로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게 기본 방향임에도 교육 현장의 모습은 그렇지 못했다. 교육 현장에서 수월성이나 경쟁 원리를 무시한 채 무조건적 평등이나 평준화에 사로잡혀 근시안적 대책만을 거듭한다면 선진국으로의 도약은커녕 이대로 주저앉고 말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무엇보다 30년간 수정이 금기시되어 온 고교평준화 제도, 3불 정책에 대해서도 이제는 국가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과학 교육의 약화 문제도 과목 이기주의를 떠나, 21세기 지식기반사회를 선도할 인재를 양성해야 하는 시대의 절박한 요구에 부응해 근원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교육인적자원부가 행정적 지원을 넘어 교육과정의 편성, 입시제도 등 교육의 모든 분야를 좌지우지하고 예산을 이용한 규제와 당근으로 근시안적 정책을 계속 고집한다면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는 물론 우리 자녀가 일하고 살 풍요의 기반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박영아 명지대 물리학과 교수 한국물리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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