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종수]선거판 기웃거리는 공무원 멀리하라

  • 입력 2007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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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경제학자 앤서니 다운스는 새로운 정권이 탄생하는 과정을 ‘선거라는 시장에서, 정책이라는 상품을, 정당이라는 공급자로부터, 유권자라고 하는 소비자가, 표라는 돈을 주고 사는 과정’으로 묘사했다. 대통령 선거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지만 정책이라는 상품도, 소비자로서의 유권자도, 공급자로서의 정당도 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 대신 줄서기와 옷 갈아입기, 고질적인 이합집산이 일찌감치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어떤 의원은 8번째 당적을 바꿨는가 하면, 1963년 정당법이 제정된 이래 110번째의 정당이 탄생했다. 정당의 평균수명이 3년 정도이니 일러 무엇 하겠는가.

일손 놓고 벌써부터 줄서기

정치판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선거철마다 관가가 들썩이고 공무원의 줄서기가 횡행하는 모습이 국정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정년을 앞둔 어느 공직자는 한 후보의 입맛에 맞는 정책개발에 다걸기(올인)하는가 하면, 약삭빠른 고위 공무원은 양다리를 걸치기도 한다. 성실한 공무원마저 불안감에 휩싸여 창밖으로 신경을 뺏기기 일쑤다. 중앙정부의 대선뿐 아니라 시골의 군수 선거에서도 선거철이면 줄서기가 난무하고, 그에 따른 논공행상 인사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는다.

생각해 보면 직업공무원제야말로 국정의 공정성과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보루다. 관료제는 사회적 합리성을 지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공무원 조직은 변화무쌍한 정당의 출몰이나 정권의 진퇴에도 불구하고 정책적 합리성을 유지해야 한다. 국민을 위한 공복(公僕)이 자리를 비워 두고 자료 제공과 정책 개발을 명분으로 후보 사무실을 기웃거리는 사이 부정과 부실의 씨앗이 독버섯처럼 자란다.

공직사회의 실적평가도 무너진다. 연줄과 편 가르기에 편승해 무능력자가 고위직으로 임명되면 성실한 공무원들이 일이 손에 잡힐 리 없다. 능력과 실적에 철저해야 하는 공직사회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이다. 그렇게 임명받은 당사자가 제대로 일을 할 리 만무하다. 정치적 한건주의에 골몰하게 되고, 임명권자에게만 충성하며, 예산 낭비와 정책 부실에는 둔감한 관리자가 된다.

미국도 건국 초에는 무려 100년이 넘도록 공무원의 정치화에 시달렸다. 이 같은 악습은 결국 공직의 부정 거래에 실망한 한 젊은이가 1881년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을 암살하는 사건을 불렀다. 정치적 거래와 매관매직에 분노한 젊은이가 엽관(獵官)주의를 향해 총을 쏜 것이다. 대통령 암살이라는 비극을 겪은 후에야 미국은 1883년 펜들턴 법을 만들어 공직의 정치적 거래를 금하는 동시에 실적주의를 철저히 보호해 왔다.

정치적 자유도가 높은 영국에서도 공직의 정치적 오염은 엄격히 통제된다. 몇 해 전 영국 총리실을 방문했을 때 보좌관이 한 말을 잊을 수 없다. 집권자에 대한 공무원의 정치적 충성을 자랑하는 한국 측 대표에게 그는 “공무원의 정치적 충성심 때문에 국민이 치러야 하는 사회적 대가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일갈했다. 정권의 변동에 관계없이, 공무원이 지켜야 하는 정책적 합리성과 원칙이 있으며, 이를 철저히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선거 후 논공행상 후유증 심각

한국도 그동안 공직자의 줄서기 때문에 많은 사회적 대가를 치렀다. 이제 대통령이 되겠노라고 선언한 후보들은 그러한 폐단을 알아야 한다. 이념에도 정책에도 닿지 못하는 줄서기는 부정한 거래일 뿐이다. 공직사회의 실적평가를 위협하고, 정부의 신뢰를 떨어뜨린다. 대통령에 취임한 후에 줄서기 폐단을 고치겠다고 생각하면 이미 늦다. 편 가르기가 끝나 버린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후보 시절에 공복 자리를 팽개치고 얼굴 도장 찍기에 바쁜 공직자를 과감히 물리치고, 행정 수반과 전체 공무원의 수장으로서 바른 원칙을 선언해야 한다. 국민은 그런 대통령을 원한다. 아마도 그런 후보에게 표를 줄 것이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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