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번 합의는 불법적인 금융거래에 면죄부를 준 측면이 있는 등 적지 않은 문제를 남겼다는 지적이 많다.
▽자존심 세운 북한=2500만 달러엔 북한이 불법행위로 조성한 자금이 포함돼 있으나 미국은 이를 ‘좋은 일’에 쓰도록 했기 때문에 ‘북한의 불법에 동조했다’는 비난은 피할 수 있게 됐다.
미 재무부는 이날 대니얼 글레이저 부차관보 명의의 성명에서 “이번 북-미 합의에 대한 지지와는 별개로 재무부가 BDA은행에 취한 (돈세탁 우선 우려 기관 지정) 결정은 유효하다”고 밝혔다.
돈세탁 등에 대한 법적 책임은 BDA은행 측에 물었기 때문에 이 은행이 북한의 자금 전액을 해제할 것인지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는 논리다.
북한은 자금의 용처에 대한 조건이 달려 있긴 하지만 동결됐던 돈을 전부 되찾게 돼 손해를 보지 않고 자존심까지 세울 수 있게 됐다. 게다가 BDA은행에 묶인 돈을 중국은행에 있는 북한 소유의 조선무역 계좌로 이체하라는 북한의 요구가 실현될 경우 북한은 사실상 국제 금융시장으로의 복귀를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되는 셈이다.
이날 중국 베이징(北京)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열린 제6차 6자회담 개막식에서 북한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베이징에도 봄기운이 찾아왔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김 부상은 개막식장에 다른 참가국의 수석대표들이 모두 입장한 뒤 가장 늦게 들어섰다. 그는 어깨에 힘을 준 채 여유 있고 자신감에 찬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남은 문제는=미국의 이번 조치는 대량살상무기(WMD) 거래 등 불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어도 제재를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북한에 전달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스튜어트 레비 미 재무부 테러리즘·금융정보 담당 차관은 지난해 “WMD 판매에 연루된 북한의 단천상업은행이 BDA은행에 계좌를 갖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다른 문제는 북한이 돌려받을 2500만 달러가 모두 인도적, 교육적 목적으로 쓰이는지를 제대로 검증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이날 “살면서 보장되는 건 없다”며 이를 시인했다.
북-미가 6자회담을 진전시키기 위해 북한의 불법 금융행위에 따른 법적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다 보니 동결된 자금을 해제할 법적 근거와 금융기술상의 방법을 관련 당사자들이 제대로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미 재무부가 이날 “북한은 마카오 당국과 법적 기술적으로 복잡한 문제들을 풀어야 한다”고 밝힌 것은 그런 문제점을 드러낸 것이다.
베이징=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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