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허공에 뜬 경제 강의

  • 입력 2007년 1월 25일 23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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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할 일은 미루지 않고 제때 해야 한다. 전략과 함께 중요한 건 개혁의 속도며 실천”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왜 모든 걸 다음 정권에서나 하라고 하느냐”고 따지면서 “1년이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100% 맞는 말이다.

대통령에게 할 일을 하지 말라고 한 국민은 없다. 그러나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새해 벽두부터 여론도 싸늘하고 국회 통과도 어려운 개헌을 거듭거듭 주장하며 내각을 소모전에 투입하는 것이 급한 일이 아니다. 정부가 속도를 내서 최우선으로 실천해야 할 일은 경제 활성화와 민생 개선을 가로막고 있는 제도와 정책을 확 걷어내는 일이라고 절대다수 국민은 외치고 있다.

시장과 기업이 누리는 자유와 자율이 위축돼 국내 투자는 늘지 않고 돈이 해외로 빠져 일자리마저 빼앗기고 있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타개하는 것이 가장 급한 개혁과제다. 그럼에도 정부는 모처럼 국내 투자를 하겠다는 기업에 대해서조차 출자총액 제한, 수도권 공장 신증설 억제, 애매하기 짝이 없는 환경규제 등으로 적기(適期) 적소(適所) 투자를 훼방 놓고 있다. ‘속도개혁’은커녕 민간의 ‘속도경영’에 대한 방해다. 21세기 세계적 무한경쟁 속에서도 잘나가고 있는 나라 가운데 정부가 이런 역(逆)개혁을 하는 사례가 있으면 대 보라.

경제 실정(失政)에 대한 책임의식도 희박하다. 전국에서 개발사업을 벌여 천문학적인 보상비를 풀고, 수요 공급의 원리를 무시한 정책을 쓰며, 늘 뒷북치는 식으로 타이밍을 놓친 대책을 내놓는 바람에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

대통령은 “경제정책은 차별화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책임회피성 발언으로 들린다. 지난날의 역사를 보거나 오늘날의 세계 각국을 보더라도 누가 국정리더십을 행사했느냐에 따라 경제성적표가 큰 차이를 보였다. 독일 경제의 회복도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등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대통령은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숱한 문제들에 대해 “누가 했어도 마찬가지”라고 말하고 싶은지 모르지만 많은 국민은 그렇게 믿지 않는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같은 국가대사(國家大事)에 대해서도 대통령은 국익을 위한 갈등조정과 설득의 소임(所任) 실천 노력이 부족해 보인다. “정부는 농민단체의 편도, 이익 보는 기업 편도 아니다”는 말은 공정성을 강조하려는 뜻이겠지만, 진정 중요한 것은 전체 국익을 위한 강한 추진력이다. 국민은 허공에 뜬 경제 강의보다 실속 있는 경제성적표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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