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창모]세계의 독재자에게 보내는 경고

  • 입력 2007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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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여명이 밝기 직전, 사담 후세인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24년간 이라크를 무소불위의 철권으로 통치해 온 한 절대자의 최후는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그의 목숨은 사실상 3년 전 겨울 농가의 땅굴에서 미군에게 생포되었을 때 다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헝클어진 머리칼과 긴 수염, 입을 크게 벌린 채 검진을 받던 그의 처량한 모습에서 우리는 권좌에서 쫓겨난 독재자의 비극을 이미 보았다. 지구상에 남은 독재자들에게 주는 경고이기도 하다.

2003년 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기 전까지만 해도 후세인은 ‘중동의 자존심’을 자처했다. 초강대국인 미국을 향해 성전(聖戰)을 외치며 꿋꿋하게 버틸 힘을 가진 영웅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그가 통치하던 시절 긴 세월 동안 공포에 떨며 박해받던 민중에게 그는 권력에 눈먼 차가운 독재자였다. 나는 아직도 전쟁 당시 바그다드에서 만났던 사람들에게서 보았던 ‘사담 후세인 공포’를 기억한다.

최고 수준의 경계 상태에서 신속하게 집행된 후세인의 교수형은 미국이 패전국의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마지막 카드로 보인다.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했다는 이유로 이라크를 불량국가로 지목한 미국은 중동의 민주화를 명분으로 전쟁을 개시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래 미국이 개입한 전쟁 중 가장 긴, 가장 큰 피해를 낳은, 수렁에 빠진 전쟁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조급하게 진행된 후세인에 대한 판결과 사형 집행은 명분상 반인륜 범죄에 대한 응징이자 자유 수호자의 승리다. 또한 지구상에 남아 있는 독재자들, 특히 핵무기 개발을 진행 중인 이란과 북한의 지도자에 대한 경고 메시지로도 보인다. 무엇보다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희망을 빼앗을 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인권도 지키지 않고 국민을 모독하는 독재자가 어떤 운명에 처하는지를 분명히 보여 주었다. 이라크전쟁이 시작되자 3개월간 은신했다는 김정일은 이제 더는 숨을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후세인 처형으로 명분은 살렸다지만 문제는 이라크의 장래다. 후세인 처형이 사실상 내전 상태인 이라크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는 국제 여론의 악화와 중간선거에서의 참패 이후, 조기 철군 등 이라크에 대한 정책 수정 및 국면 전환을 위한 전환점이 필요했다. 미국은 후세인 처형을 그 시점으로 삼고자 한 것 같다.

후세인 처형에 대한 이라크 내의 반응은 벌써부터 심각하게 엇갈려 있다. 후세인의 지지 기반이자 미군의 철수를 주장하는 수니파는 극렬한 저항을 선언했다. 후세인의 집권 시절 박해를 받은 시아파와 쿠르드족은 “이제 밤잠을 편히 잘 수 있게 되었다”며 춤을 추며 환호했다. 지금으로서는 종파 간의 갈등과 보복이 더욱 격렬해지면서 이라크는 새로운 폭력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소름끼치는 인권 유린 행위를 감행한 후세인의 범죄 행위는 결단코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후세인 처형이 미국의 공격으로 숨진 수만 명의 무고한 이라크 민간인의 희생을 보상해 주는 것 또한 분명 아닐 것이다.

이제 후세인이 없는 이라크에서 보복을 멈추고, 건설적인 미래를 향해 종파 간에 화해하고 상생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아울러 미국은 이라크 국민이 더는 고통 받지 않도록 정책을 대폭 수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후세인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지금, 이전보다 훨씬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독재자들이 아직도 지배하는 국가 모두에 적용될 수는 없을까.

최창모 건국대 히브리 중동학과 교수 전 한국중동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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