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만우]‘규제의 유혹’ 느낄 땐 스타타워를 보라

  • 입력 2006년 12월 8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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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 한복판에 자리 잡은 국내 최대 건물인 스타타워는 지상 45층, 지하 8층 규모로 연면적이 6만4000평이나 된다. 현대산업개발이 1995년부터 6800억 원을 들여 2001년에 준공했는데 당시 정부의 강력한 부채비율 감축 압박을 받고 있던 상황이라 1500억 원의 손실을 감수하면서 론스타 펀드에 팔아넘겼다.

론스타는 건물을 매입한 지 3년 만에 3500억 원의 매각차익을 올리면서 싱가포르투자청에 되파는 대박을 터뜨렸다. 6년간이나 지속됐던 대규모 공사에 흘린 근로자의 피땀과 심각한 교통장애를 견뎌 낸 국민의 인내 대가는 1500억 원의 손실로 돌아왔는데 론스타는 매매계약서 두 장으로 3500억 원의 이익을 보는 횡재수를 즐겼다.

론스타는 실질적인 부동산 거래이면서도 양도소득세 회피가 용이한 주식거래의 가면을 쓰기 위해 새로 인수한 법인을 매매 주체로 내세웠다. 법인을 설립하지 않고 자본잠식 상태의 휴면 법인을 인수해 내세운 것은 신설 법인에 대한 취득세 등록세 등의 지방세 중과 규정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국세청과 서울시가 형식보다는 거래의 실질에 따라 새로 산정한 세금을 추가 고지했으나 론스타는 불복 절차를 밟고 있다.

외국인만 배불린 부채비율 감축

부채의존도가 높은 기업구조를 청산 대상으로 규정한 김대중 정부는 부채비율 200%라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기준을 들고 나와 기업을 들볶았다. 당시 평균 500%이던 부채비율을 단기간에 200%로 낮추라는 것은 억지 수준의 압박이었다. 현대산업개발의 경우 강남 요지에 임대료 수입이 보장되는 국내 최대 건물을 보유해 담보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채권금융기관을 동원하여 들볶은 까닭에 급매로 건물을 처분해 빚을 갚을 수밖에 없었다.

헐값에 팔아 버린 스타타워의 대박 행진은 론스타에서 끝나지 않고 웃돈을 얹어 주고 인수한 싱가포르투자청으로 이어지고 있다. 스타타워는 공실률이 10% 미만인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싱가포르 국민의 안락한 노후생활을 위한 기반이 되고 있고, 팔려고 마음만 먹으면 론스타 부럽지 않은 막대한 매각 차익도 보장돼 있다.

정부의 강압적 부채비율 감축 정책에 대처하기 위해 기업집단들은 계열사 간의 순환출자를 통해 중복 자본을 만들었다. 정부는 공정거래법상 출자총액제한을 폐지해 가면서 순환출자를 방조했고 부채총액은 그대로인데 부채비율만 줄어드는 본말이 전도된 구조조정이 민관합작으로 완료됐다. 사실 순환출자의 퇴로 없이 부채비율 감축 정책을 몰아붙였다면 좀 더 많은 우량기업과 대형 건물이 외국인 손에 넘어갔을 게 분명하다. 막다른 골목에서의 자구책이었던 순환출자는 결과적으로 우리 기업의 재산을 지켜낸 파수꾼이 된 셈이다.

순환출자는 정부의 공기업 구조조정에도 벤치마킹됐다. 한국산업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현물 출자된 담배인삼공사 등의 정부 보유 주식은 투신사 부실이 발생하자 대한투신으로 급파돼 순환출자의 진면목을 보여 줬다.

순환출자에 참여할 계열사가 없어 알토란 같은 빌딩을 외국인 손에 넘길 수밖에 없었던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신규 계열사 확보의 절박함을 느껴 자금 마련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부하 직원이 주식매각 대금을 챙겨 해외로 잠적했고, 정 회장은 불법자금 조성 혐의를 받고 기소돼 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서글픈 신세가 됐다.

순환출자 금지로 기업 죽일 건가

요즘 서울시내에서 사무실을 빌리기 위해 다니다 보면 대형 건물 대부분이 외국인 소유라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이런 가운데 또다시 ‘규제의 추억’을 잊지 못하고 순환출자 금지를 입법화하겠다는 세력이 등장하고 있다. 순환출자 해소를 강제하면 기업은 보유 자산을 팔든지, 아니면 부채를 더 끌어들일 수밖에 없어 또다시 외국인들에게 횡재를 떠안기거나 고위험 기업을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기업이 시간 여유를 가지고 시장원리에 따라 자율적으로 구조를 개선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 정도다.

기업 구조에 대한 ‘규제 유혹’이 일어날 때는 스타타워를 되새겨야 한다. 기업 구조는 경제관료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철학이 아니라 국민 경제의 사활이 걸려 있는 치열한 국가 전략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만우 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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