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혁]진짜 바다이야기

  • 입력 2006년 8월 25일 20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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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지갑엔 카드 사이로 명함 한 장이 꽂혀 있다.

어느 바다 사내의 명함이다. 이 사내가 내 지갑 속에 ‘한 자리’를 차지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두 달이 채 안 된다.

남의 명함을 다른 곳도 아니고 지갑에 넣고 다니는 행동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쯤은 안다. 분명한 이유는 없다. 그냥 넣고 다녔다. 다만 한 가지. 그 명함은 가끔 내게 바다를 안겨 줬다. 그것도 서울에서 1만7240km나 떨어진 남극 킹 조지 섬의 세종기지 앞바다를…. 빙하로 뒤덮여 있는 그 원시의 바다와 대륙을 떠올리게 해 줬다.

그 사내의 이름은 ‘이동화’라고 한다. 그는 1985년 11월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남극 땅에 발을 내디딘 한국해양소년단연맹 남극관측탐험대원(단장 윤석순 현 한국극지연구진흥회 회장) 중 한 사람이다. 함께 간 해양연구소의 장순근 최효 박사, 그리고 당대의 산악인 홍석하 허욱 씨에 비하면 그는 ‘무명용사’나 마찬가지다. 나이도 27세.

하지만 그는 경력 8년의 스쿠버 다이버였다. 얼핏 고요해 보이는 듯하지만 바로 얼마 전 폴란드 다이버 3명을 삼켜 버린 남극의 여름 바다.

“남빙양의 잠수 탐험은 20분을 넘기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남극 해저생물 자료가 전혀 없는 우리의 실정을 생각하면서 단 1분이라도 더 견디며 한 가지라도 더 채집하고 촬영하려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그는 무려 40분 20초나 잠수했다. 수면의 산소공급기는 영하 30도의 혹한 속에서 얼어 가고 있었지만, 그는 끝내 성게를 비롯해 남극 해양생물 30종을 채집해 냈다. 장순근 박사가 쓴 ‘남극 탐험의 꿈’ 132쪽엔 보기만 해도 이빨이 덜덜 떨릴 것 같은 유빙(遊氷) 속에서 그가 표본을 채집하는 사진이 실려 있다.

그건 모험도 아니고 탐험도 아니었다. 그건…. 애국(愛國)이었다. 극동 변경의 소국(小國)에서 태어난 어떤 사내의 턱없는 애국심이었다. 이듬해인 1986년 한국은 세계에서 33번째로 남극조약에 가입하고, 1988년 2월엔 18번째로 남극에 기지를 세우게 된다.

세상이 온통 ‘바다이야기’로 뒤덮여 있다. 이즈음 지갑을 열어 그의 명함을 꺼내 보는 일이 잦아졌다. 부산에 살고 있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매일같이 바다이야기를 듣고 보는 소감이 어떤지 묻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얘긴 꺼내지 않았다.

그에겐 너무 잔인한 질문일 것이다.

그 대신 그에게 1985년 1월 21일자 동아일보 사설 한 대목을 들려주려 한다. 당시엔 그도 봤겠지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까 싶어 일부러 옮겨 본다. ‘좁은 국토에서, 대륙에 붙은 작은 반도에서 헝클어져, 서로 잘났다고 다퉈 오던 습성이 1000년 이상 고질처럼 따라 붙어 온 우리의 사고영역에 해양, 그것도…(중략).’

바다이야기로 상심하고 분노한 독자들께, 아니 나 자신에게 20여 년 전 남극 바다에 뛰어들어 대한민국의 영토를 넓힌 어떤 사내의 ‘진짜 바다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그렇게라도 해야 이 고약하고 냄새나는 하루하루를 견뎌 낼 수 있을 것 같다.

김창혁 국제부 차장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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