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민칼럼]참여정부는 ‘메가케로스’ 동아리인가

  • 입력 2006년 8월 21일 20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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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본란에서 메가케로스라는 학명의 짐승을 언급한 적이 있다. 뿔이 너무 무거워 제대로 운신을 못하면서도 성질은 사나워 싸움에 몰두하다가 멸종한 사슴과의 동물 얘기다. 서양에서는 인격과 능력에 비해 너무 큰 감투를 쓴 사람을 메가케로스라고 부른다. 요즘 집권세력 주변을 보면 메가케로스 동아리를 보는 느낌이다.

사람의 말이나 글은 그의 인격과 교양을 나타낸다. 집권 초기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문제 하나만 잘되면 나머지는 다 ‘깽판 쳐도’ 상관없다고 말했을 때 많은 사람이 기겁을 했지만 그것은 작은 시작에 불과했다. 3년 반 동안 측근 인사들은 대통령에게 질세라 듣기 거북한 말들을 거침없이 토해 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남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표현을 하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약탈정부’, ‘계륵 대통령’을 언급한 신문사들의 취재를 청와대가 거부한 것이 그런 사례다. 대통령을 음식에 비유했다고 정부가 취재를 막은 나라는 유엔 회원국 가운데 우리가 유일할 것이다.

“청와대에 반발하다가 자리에서 밀려났다”는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 사건은 곳곳에 서식하던 메가케로스들의 모습을 드러나게 했다. 대한민국이 무슨 아프리카 신생국인가. 정부산하 기관에 예산이 없어 은행 돈도 아니고 사채까지 끌어다 써야 했다니. 이렇게 나라의 격을 떨어뜨리는 코미디 같은 사건들은 수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메가케로스들이다.

청와대 안에 “배 째 드리죠”라고 유 차관에게 말한 사람이 있다는데 그도 사나운 메가케로스임에 틀림없다. 당사자로 지목된 대통령비서관은 인터넷에 올린 글에서 ‘배 째라’는 말이 “입에 담기 민망한 협박성 표현”이라고 했는데 국민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의 입에서 나온 ‘귀에 담기 민망한 협박성 표현’을 참아 왔는지 본인은 아는가. 그는 이 글에서 ‘효자동 강아지가 청와대 보고 짖기만 해도…’ 운운했는데 이 비서관이 왜 느닷없이 ‘개 짖는 소리’로 언론을 비판했는지 민망하기만 하다. 그가 비판 언론에 대해 ‘저주의 굿판을 걷어치우라’고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글은 입에 담기 고상한 말이었던가.

노 대통령은 홍보수석비서관의 아리랑TV 부사장 ‘인사청탁’ 논란과 관련해 “청탁이 아니라 추천”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청탁도 추천도 아니다. 대통령을 모시는 수석비서관이 청와대 저 아래 차관에게 인사를 ‘추천’하는 것은 (서 있는 발판의 높이를 고려할 때) 사실상 지시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급(級)이 모자라는 사람을 쓰라고 했으면 차관이 그런 압박을 버티며 반발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 인사가 부사장에 임명됐더라면 메가케로스 대열에 새 식구가 하나 늘 뻔했다.

청와대 내에 수석비서관실이 많은데 가장 공손해야 할 홍보업무를 담당하는 곳이 유난히 시끄러운 이유는 무엇인가. 차이가 있다면 다른 수석실에는 직업 관리 출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오랜 기간 공직생활을 한 관리들은 대개 자기절제에 익숙해져 언행이 신중하다. 지금 설화를 빚고 있는 메가케로스들은 아쉽게도 그런 과정을 거치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멀쩡한 직업 관리의 배나 째고 앉아 있다면 나라꼴이 어찌될까.

청와대는 노 대통령이 최근 언론사 간부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민에게 불경스럽게 보일까봐 묻지 못한 것이 있는데 ‘참여정부가 뭘 잘못했지요?’라는 질문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발표했다. 나도 그동안 노 대통령에게 불경스럽게 보일까 봐 묻지 못한 것이 있는데 ‘뭘 잘 하셨는지요’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대통령이 뭘 잘못하고 있는지 모르는 메가케로스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본인은 잘못을 깨닫지 못할 수 있다. 측근들 자신이 머리보다 큰 감투로 눈과 귀가 뒤덮였으니 세상이 안 보이고 안 들리는 것도 당연하다.

정권 내부의 메가케로스들이 하루아침에 됨됨이가 달라져 품위 있는 언행을 하게 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아마도 국민은 1년 반이나 더 그들의 험하고 속된 말을 들으며 살아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과거 메가케로스들은 남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성품에 의해서 사라지지 않았던가. 우리에게도 그런 날은 올 것이다.

이규민 大記者 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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