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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수몰지구서 발견된 성곽 “고구려 동황성일 가능성 높다”

입력 2006-05-12 03:01업데이트 2009-09-30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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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한 성곽. 고구려는 중국의 토성이나 벽돌성과 달리 옥수수 알갱이 형태의 돌을 서로 맞물리게 쌓고 성문 앞을 ㄷ자 형태로 둘러싼 옹성 구조를 일찍부터 도입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베일에 싸였던 고구려의 옛 수도 동황성(東黃城)이 발견된 것일까. 중국 지린(吉林) 성 바이산(白山) 시 윈펑(雲峰)댐 수몰지구에서 2300여 기의 고구려 고분과 함께 발견된 성터에 대해 학계에서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11일자 A1·13면 기사 참조

발굴을 주도한 중국 학자들이 “성벽의 구조나 축성 형태가 고구려의 성과는 다르며 한나라 때 쌓은 성”이라고 주장한 것이 고구려사 왜곡을 시도하는 동북공정과 연결될 경우 한중 간에 또다시 역사 논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서영수 단국대 교수는 이 성이 삼국사기에서 고구려의 임시수도로 언급된 동황성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평양동황성으로도 기록된 동황성은 고구려 11대 동천왕과 16대 고국원왕 때 각각 관구검과 모용황의 침략으로 수도인 환도성이 함락된 뒤 임시수도로 삼은 성이지만 고고학적 발굴이 뒷받침되지 못했다.

평양은 당시 수도를 뜻하는 일반명사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평양동황성은 ‘수도 동쪽에 있는 누런 빛깔의 성’을 뜻한다. 이번에 발굴된 윈펑댐의 성터는 국내성(현재의 지안·集安) 동쪽 40여 km에 위치한다. 돌에 자갈과 흙을 섞어 넣은 건축법으로 상대적으로 누런빛을 띠었을 수 있다.

최종택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발견된 성곽이 중국 한나라 때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성곽과 고분군이 함께 발견된 것으로 봐서 고구려 것일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방어용 산성이 아닌 평지성이라는 점은 이 지역을 고구려가 강력하게 지배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구려성 전문가인 서길수 서경대 교수는 “중국 한대의 성은 토성이었고 고구려의 성은 돌성이었는데 이번에 발굴된 성은 중국 측 발표대로라면 겉은 돌로 쌓고 안은 자갈과 모래를 섞어 넣은 돌성”이라고 반박했다. 서 교수는 또 “성터의 구조를 보면 치(성 밖으로 돌출한 방어시설)와 옹성(치를 발전시킨 성문 방어 구조물)을 갖추기 전인 3세기 이전의 초기 고구려성일 가능성이 높다”며 “동황성이거나 아니면 국내성 이전의 수도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최광식 고려대 교수는 “400여 년간 도읍지였던 고구려 국내성에는 원래 1만2000여 기의 고분이 있었다”며 “윈펑댐 고분의 수가 그 20%에 이른다면 대략 100년 미만 동안 임시수도 역할을 했던 동황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고구려는 ‘성의 나라’라 할 만큼 돌로 쌓은 견고한 방어산성 위주로 취락지를 형성했고 수도의 경우에는 평지성과 방어용 산성을 함께 운영했다. 따라서 인근에서 방어용 산성이 확인될 경우 동황성일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학자들은 중국이 윈펑댐에 다시 물을 채우기 전에 성터와 고분에 대한 정확한 조사를 통해 실체를 규명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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