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김일성大출신 주성하기자가 본 뮤지컬 ‘요덕스토리’

입력 2006-03-15 03:06수정 2009-10-08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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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첫 공연을 시작하는 뮤지컬 ‘요덕스토리’의 한 장면. 사진 제공 극단 빅디퍼
《2005년 미국 국무부 인권보고서는 약 15만∼20만 명의 북한 주민이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돼 있다고 밝혔다. 한번 들어가면 살아 나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정치범 수용소. 그중 유일하게 일부 석방이 가능한 곳이 함경남도 요덕수용소(15호 정치수용소)다. 가장 가벼운 죄를 지은 사람들이 수감되는 이곳이 참혹한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대명사로 알려진 것은 남한에 요덕 출신의 탈북자들이 대거 입국했기 때문이다.》

○탈북감독의 북한인권 폭로 뮤지컬

13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프리뷰가 시작된 뮤지컬 ‘요덕스토리’는 바로 이 요덕정치범수용소의 참상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북한 인권을 폭로하는 뮤지컬이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김일성 초상화와 북한 노래가 등장한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는가 하면, 투자를 약속했던 펀드가 돌연 계획을 철회하고 극장이 대관계획을 취소하는 등 간난신고를 겪은 끝에 탄생한 작품이다.

출연진은 남한 배우지만 극본은 탈북자인 정성산(37) 감독이 직접 썼다. 정 씨는 남한 방송을 들었다는 죄목으로 황해도 사리원 감옥에 수감됐다가 1995년 탈북했다. 그는 “함북 회령군의 22호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돼 있던 아버지가 2002년 돌에 맞아 공개처형을 당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뒤 북한의 참혹한 인권상황을 고발하기 위해 이 뮤지컬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요덕스토리’의 주인공은 무용수로 각광받던 노동당 중앙당 간부의 딸인 강연화. 어느 날 아버지가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게 되자 가족과 함께 요덕수용소로 끌려간 연화는 소장 이명수에게 성폭행당해 임신한다. 이후 명수는 사실이 드러나 수용소 소장에서 수감자로 전락하고 연화와 함께 남한으로 탈출하려다 자폭한다.

150분간의 공연이 끝난 뒤 객석을 채운 800여 명의 관객을 둘러보니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연방 눈물을 닦는 구정희(73·서울 서초구 방배동) 씨는 “불쌍해서 볼 수가 없었다. 북한 주민들을 하루 속히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고시준비생이라는 이재광(29) 씨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나올 법한 무거운 소재가 뮤지컬로 성공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무겁지만 외면할 수 없는 주제

탈북하기까지 북한과 중국의 감옥, 노동단련대 7곳을 거친 기자의 소감은 불만이었다. 요덕을 뮤지컬에 담은 자체가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덕에서는 누구도 고개를 쳐들고 다니지 못한다. 이유도 없이 짐승처럼 매를 맞아야 하는 그곳에는 끝없이 무거운 침묵만 흐를 뿐이다. 그곳을 노래로 표현하다니…. 죽음의 공포를 춤으로 표현하다니….

누군가 내게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남녀 간의 사랑을 주제로 뮤지컬을 만들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한다면, 나는 “그것은 희생자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뮤지컬이 실화라면서…”라고 눈물을 훔치는 할머니에게 “현실에선 저만한 일도 일어날 수 없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소장의 종노릇을 하는 납북 일본인 여성, 보위원들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독교 신자의 설정, 영어자막 등을 통해 ‘요덕스토리’가 남한을 넘어 미국과 일본 등 세계 시장을 겨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당연히 북한의 ‘레미제라블’을 세계는 꼭 알아야 한다. 요덕스토리가 북한의 인권실상을 고발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첫 양심고백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요덕스토리’는 관람할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공연은 4월 2일까지. 2만∼8만 원. 02-552-9311∼2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용서 통해 남북이 하나 됐으면…”▼

14일 오후 ‘요덕스토리’ 제작진은 공연장인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일본 NHK 등 외신이 취재했고 노르웨이의 인권단체 관계자도 찾아와 제작진을 격려했다. 탈북자 출신 연출자 정성산(사진) 씨는 이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용서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관객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용서다. 북한 당국이나 다른 모든 분에게 용서가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보여 주고 싶다. 또 용서로 얼마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지도 알려 주고 싶다. 인간의 존엄 앞에서는 어떠한 이데올로기나 철학도 이길 수 없다. 굶어죽다 못해 맞아죽는 것이 바로 북한의 현실이다. 나는 무조건 북측을 저주하기보다는 용서를 통해서 하나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요덕스토리’를 기획한 계기는….

“북한에서 돌아가신 내 아버지의 한을 풀어 드리고 싶었다. 아버지가 북한에서 당한 고문을 낱낱이 파헤친 영화를 만들 결심을 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다 썼음에도 불구하고 제작 환경이 좋지 않아 영화로 제작을 못했고 투자도 받을 수 없었다. 악극으로 제작하려 했다가 결국은 뮤지컬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뮤지컬에서 어떻게 형상화했나.

“아버지의 죽음은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죽음은 내 아버지 한 분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용소에서 죽는 사람의 수는 어마어마하다. 이 모든 사람을 다 포괄하는 뮤지컬이기 때문에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평양연극영화대를 졸업한 정 씨는 남한에 정착한 뒤 영화 ‘쉬리’와 ‘공동경비구역 JSA’를 각색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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