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저격사건 문서공개]당시 관계자들 증언

  • 입력 2005년 1월 20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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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세광 법정 출두교도관들의 계호를 받으며 범인 문세광이 서울형사지법 대법정으로 끌려 나오고 있다. 국가보안법상 내란목적 살인죄 등 6가지 죄목으로 기소된 문세광은 대법원에서 원심대로 사형이 확정돼 1974년 12월 20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문세광 법정 출두
교도관들의 계호를 받으며 범인 문세광이 서울형사지법 대법정으로 끌려 나오고 있다. 국가보안법상 내란목적 살인죄 등 6가지 죄목으로 기소된 문세광은 대법원에서 원심대로 사형이 확정돼 1974년 12월 20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문세광 사건 관련 외교 문서가 공개되자 사건 관계자들은 무거운 표정으로 당시 기억을 끄집어냈다.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법률보좌관으로 문세광의 자백을 처음 받아 낸 한나라당 김기춘(金淇春) 의원은 “문세광의 배후 세력이 조총련이고 결국 북한이 관련돼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당시 수사기록을 보면 진실은 명백하다”며 사건을 둘러싼 항간의 의혹을 반박했다.

김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 사건에 대한 한일 간 입장 차가 커 외교 갈등이 있었다는데, 일본으로서는 자국 여권 소지자가 남의 나라 대통령을 시해하려는 사건이 터졌기 때문에 책임을 면하려 했었을 것”이라며 당시 일본 측 사건 발표의 신빙성에 의구심을 표했다.

그는 사건의 진범 논란도 일축했다. 김 의원은 “문세광은 자기가 사용한 권총을 훔친 일본 내 파출소 광경을 그림으로 그리고 권총 케이스를 어느 강에 버렸다고도 진술했다. 이를 일본 측에 알려줬더니 문세광이 지목한 강 하류에서 그 권총 케이스를 찾아냈다”며 “이런 것을 종합하면 문세광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 서울지검장으로 이 사건의 수사본부장을 맡았던 김일두(金一斗) 변호사도 “문세광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순간까지 범행을 깊이 반성했다”며 문세광의 단독 범행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그는 “문세광은 사형 직전에 ‘육영수 여사에게 미안하다’는 유언을 남겼다”며 “육 여사가 대통령경호원이 쏜 오발탄에 서거했다는 식의 의혹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치안본부 1부장으로 사건 수사에 참여했던 이건개(李健介) 전 자민련 의원은 “초동 수사에만 참여했었다”며 가급적 말을 아꼈다. 이 전 의원은 “수사 기록에 나온 것이 전부다. 수사 기록과 판결문에 모든 진실이 다 나온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또 문세광에게 저격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진 김호용과 일본 정부의 미온적 수사 태도에 대해선 “지금 쉽게 말할 수 있는 내용들이 아니다”며 말을 흐렸다. 한편 저격 후 문세광을 서울 중구 을지로 국립의료원으로 후송한 뒤 수갑을 채웠다는 전직 경찰관 A 씨는 “문세광은 체격이 아주 좋았다. 팔목이 굵어서 수갑을 겨우 채웠던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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