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59년 ‘에스페란토’ 자멘호프 출생

  • 입력 2004년 12월 14일 17시 46분


코멘트
“내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도시엔 4개의 민족이 섞여 있었다. 러시아인, 폴란드인, 독일인, 그리고 유대인. 그들은 각각 자신의 언어를 썼고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을 적으로 생각했다. 나는 인류는 모두 형제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지만 거리에 나서면 인류는 없고 오직 민족만 존재했다. 어른이 되면 꼭 이 부조리를 없애기로 마음먹었다.”

루드비히 자멘호프(1859∼1917). 바벨탑 이전 시대를 그리워했던 이상주의자.

1859년 12월 15일 폴란드 비아위스토크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사람 사이의 증오가 언어 장벽 때문에 생긴다고 믿었다.

바르샤바에서 보낸 고교 시절부터 세계 공용어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 작품이 완성된 것은 1878년, 당시 그의 나이 불과 열아홉이던 때. 세계적인 언어를 공개하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을까. 세계 공용어는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안과 의사 생활을 시작한 1885년이 되어서야 세상에 데뷔했다. 당시 언어의 교본에 썼던 그의 필명이 ‘닥터 에스페란토’. 에스페란토는 ‘희망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인데 언어의 명칭으로 굳어졌다.

에스페란토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며 각지로 퍼져 나갔다. 한국에는 1920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시인 김억이 서울YMCA에서 강습회를 열면서 처음 소개됐다. 세계적으로 160만 명 정도가 에스페란토를 유창하게 쓰는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는 6000여 종. 그 가운데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언어는 에스페란토 하나뿐이다. 기록에는 800여 종의 인공어가 보이지만 언중(言衆)이 수용하지 않았다. 데카르트나 라이프니츠 같은 저명한 철학자가 발표한 인공어조차 그저 발표로 끝났다.

에스페란토의 위대함은 남아 있는 유일한 인공어라는 점 때문이 아니다. 그 배경에 흐르는 사상에 있다. 만인 평등과 세계 평화. 자멘호프는 이를 ‘호마라니스모(인류인주의 또는 지구인주의)’라고 이름 붙였다.

평화를 바랐던 이상주의자의 고향은 그의 사후에도 그다지 평화롭지 않았다. 대부분이 유대인이던 비아위스토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지배를 받으면서 주민의 절반 이상이 살해되고 도시도 파괴되는 아픔을 겪었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