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오명철]알아들었느냐? 아들아!

  • 입력 2004년 9월 14일 18시 32분


코멘트
고학으로 대학을 마친 아빠는 체질적으로 낭비를 싫어한다. 돈을 많이 벌더라도 절약 검소한 생활을 해야 하며 그것이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아빠는 냉장고에서 음식이 상해 버려지는 것을 참아내지 못한다. 아내 몰래 냉장고를 뒤져 약간 맛이 가기 시작하는 음식을 서둘러 먹어치울 정도다.

아들은 명품족(名品族)이다. 티셔츠 하나를 입어도 제대로 된 옷을 입어야 하고, 신발 한 켤레도 허투루 사 신어서는 안 된다는 게 아들의 지론이다. 명품 브랜드에 대한 최신 정보도 꿰뚫고 있다. 언젠가는 설날 세뱃돈 받은 돈을 몽땅 털어 명품 구두 한 켤레를 사 신어 아빠를 놀라게 한 적도 있다. 아들은 이제 평상복 차림으로 집을 나서는 아빠를 향해 “나이도 있고 사회적 지위도 웬만하니, 그에 맞게 옷을 입으셔야죠”라는 충고를 던진다.

아빠는 오래도록 자신이 옳다고 믿었다. 시간이 가면 아들이 자신의 뜻을 이해해 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생각이 바뀐 것은 아들이 아니라 아빠다. 아빠 세대처럼 살고, 먹고, 입다가는 아들 세대가 결코 1만달러 고지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신발 커피 휴대전화를 예로 들자. 편하고 발에 맞으면 그만인 신발을 선호하는 아빠와 그런 소비자로 가득한 사회는 결코 국민소득 1만달러를 넘어설 수 없다. 기능별 종류별로 각기 다른 제품에다 디자인과 색상은 물론 치수까지 제각각인 제품을 찾는 아들과 그런 소비자를 염두에 두고 신발을 만드는 기업만이 국민소득 2만달러를 달성할 수 있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물을 끓여 커피 두 스푼에 크림 한 스푼, 각설탕 두 개가 정량인 이른바 ‘다방커피’나 ‘자판기 커피’로는 결코 국민소득 1만달러를 넘어설 수 없다. ‘스타벅스’나 ‘커피 빈’ 같은 브랜드 커피를 마시는 소비자가 되고, 매일 각기 다른 커피를 내놓을 정도의 업소가 돼야 비로소 국민소득이 2만달러에 이를 수 있다.

휴대전화의 기능을 오로지 급한 전화를 걸고 받는 것으로 한정하는 아빠 또한 결코 2만달러 세상에서 살 수 없다.

아빠는 자신의 감각과 소비 패턴으로는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도 결코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없다는 것을 나이 오십이 되어서야 알게 됐다. 아빠는 이제 아들에게 말한다.

“나는 내 식대로 살겠다. 그러나 너는 절대로 나처럼 살지 마라. 2000원짜리 라면 한 그릇을 먹은 뒤 5000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것을 흉봐서도 안 된다. 그래서는 아무 발전이 없다. 국제사회를 무대로 돈 많이 벌어 고급차도 타고, 명품 신사복도 사 입어라.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네 자신이 명품이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내친 김에 아빠는 아들에게 한마디 더 한다. “할아버지와 아빠 세대가 죽자 사자 고생해 국민소득 1만달러를 만들었다. 할아버지 세대는 아빠 세대보다 더욱 고생이 많으셨다. 잘 먹고 잘 배운 너희 세대가 2만달러를 만들지 못한다면 이는 전적으로 너희들 잘못이지 할아버지나 아빠 세대의 책임이 아니다. 알아들었느냐? 아들아!”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