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 문제의 심각성을 감안할 때 어느 정도의 만기연장과 이자부담 완화는 불가피한 점이 있다. 하지만 앞서 본란에서 지적했듯이 원금까지 감면해 주겠다는 것은 도덕적 해이를 확산시키고 신용질서를 무너뜨리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낳을 소지가 크다.
지나친 선심성 지원의 부작용은 정부가 신용불량자대책의 윤곽을 제시한 10일 이후에 이미 나타나고 있다. 원리금 삭감 등 더 좋은 조건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에 상환을 미루는 채무자가 속출하면서 연체율이 급등했다. “대환대출을 안 해줘도 좋으니 신용불량자가 되게 내버려 달라”는 연체자까지 나오고 있다.
힘들어도 원리금을 성실하게 갚는 채무자들까지 흔들리고 있다. 어떤 주부는 “신용불량자가 안 되려고 아이들 먹고 싶다는 것도 못 사주면서 연 22∼27%의 이자를 꼬박꼬박 내왔는데 나 같은 사람은 외면하고 왜 신용불량자만 돕느냐”고 항변한다.
‘빚은 몇 년이 걸려도 내 힘으로 갚아야 한다’는 상식이 무너지면 신용사회와 신용경제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 해악은 신용불량자가 몇십만명 늘어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정부는 총선용 선심의 의도가 없다면 원금 감면을 재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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