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78년 ‘붉은 여단’ 伊 전 총리 납치

  • 입력 2004년 3월 15일 1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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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갱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1978년 3월 16일. 대낮의 이탈리아 로마 중심가. 국회의사당으로 향하던 알도 모로의 승용차가 테러리스트들의 급습을 받았다. 순식간에 경호원 5명이 사살되고 그는 납치된다.

모로는 총리를 다섯 번 지낸 정계의 거물이었다. 기민당의 당수였다. 극좌 테러집단인 ‘붉은 여단’은 그를 풀어주는 대신 동료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모로는 납치된 뒤 거의 매일 정부에 협상을 권하는 편지를 쓴다.

그러나 당시 줄리오 안드레오티 총리는 모로의 편지를 일축했다. 정부는 무력행사가 됐든 협상이 됐든 그를 구하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 모로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편지에 이렇게 쓴다. “내 장례식에 기민당의 그 누구도 참석하지 말라!”

그해 5월 9일 모로는 가슴에 11발의 총탄을 맞은 채 시체로 발견된다. 사건은 일단락됐다.

그리고 14년이 흐른 1992년. 사건의 진실이 ‘먼지’를 털어내기 시작했다.

부패척결에 나선 디 피에트로 검사의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가 정치권과 마피아의 검은 커넥션을 파헤치면서 안드레오티 총리가 ‘모로 사건’의 몸통으로 떠오른다.

전향한 마피아 두목들은 안드레오티가 충분히 모로를 구할 수 있었으나 마피아에 “기민당은 모로의 구출을 원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이 사건을 추적하던 통신사 기자의 암살 배후로 그를 지목한다.

정황은 분명했다.

그러나 안드레오티가 누군가. 총리를 7차례나 지낸 전후 이탈리아 정치의 최대 실력자였다. 마피아 사회의 ‘아저씨’요, 보수 정치세력의 대부였다.

‘마니 풀리테’와 안드레오티의 보수진영 사이에 사활을 건 전선이 형성된다. 그러나 결과는 ‘마니 풀리테’의 패배였다.

모로를 납치한 뒤 죽 그의 곁을 지켰던 주범 마리오 모레티의 술회.

“우리는 ‘벌거벗은 권력’을 목격했다. 정부 인사들은 모로의 부하였고, 내무장관은 그의 친구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구하려들지 않았다. 단지 그의 죽음만을 원했다. 그들은 대체 무엇이 그토록 두려웠을까.”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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