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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6월 6일 17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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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고수(高手)가 고수를 알아본다는 말은 대체로 맞다. 그러나 상대방의 천재성을 촉수에 포착한 뒤의 반응은 제각기 다르다.
‘인류사상의 위대한 만남’을 빚어낸 독일 이상주의의 두 별 괴테와 실러의 만남. 처음 두 사람 사이에는 경계심이 역력했다. 실러의 언급을 차례로 살펴보자. ‘그는 내가 존경하는 얼마 안 되는 사람 중 하나’ ‘우리가 서로 아주 가까이 다가서게 될 것이라는 데에는 회의가 든다’ ‘그는 항상 자기 자신을 간직할 뿐, 자기 자신을 내주지 않는다’ ‘그는 나를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훗날 실러는 이 시기를 가리켜 ‘괴테라는 요새를 폭파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고 고백했다. 만약 괴테가 실러를 ‘잠재적인 경쟁자’로, 실러가 괴테를 ‘걸림돌’로만 파악했다면 두 사람은 영원히 가까워지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문학사에 있어서도 큰 손실을 가져왔을 것이다. 둘의 관계를 구원한 것은 ‘실리’였다. 창작의 위기에 빠진 두 사람이 대화를 통해 사유의 폭과 창작기법을 더욱 성장시키고 확장시킬 수 있었던 것.
‘율리시스’의 작가 조이스와 부조리극의 창시자 베케트의 만남. 젊은 베케트에 대한 조이스의 평은 ‘재능은 있는 것 같네’가 전부였다. 베케트는 과묵하고 부지런한 협력자가 됐지만 ‘속으로 끓고 있는 물’ 같다는 평을 받았다. 그는 훗날 조이스에게서 받은 모든 영향력을 부인했다. 바그너와 니체,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플로베르와 조르주 상드…. 예술사상에 남는 11개의 만남과 그 과정이 낳은 경외, 찬탄, 경쟁, 무시, 증오를 이 책은 차례로 펼쳐 보인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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