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호밀밭의 파수꾼을 떠나며'

  • 입력 2003년 5월 30일 17시 17분


코멘트
샐린저를 사랑한 메이나드. 사진제공 동서문화사
샐린저를 사랑한 메이나드. 사진제공 동서문화사
◇'호밀밭의 파수꾼을 떠나며'/조이스 메이나드 지음 이희영 옮김/500쪽 1만원 동서문화사

18세의 메이나드는 1972년 ‘뉴욕 타임스 매거진’에 한 편의 에세이를 실었다. 60년대 청춘의 염세적 기분과 소외감을 호소한 글에 전국에서 수백통의 팬레터가 날아들었다.

그중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작가 J D 샐린저의 편지 한 장이 있었다. 자신의 마음에 충실하면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서 샐린저는 대단히 열광적인 지지와 존경을 받고 있는 중년의 남성작가였다. 메이나드는 예일대 기숙사 방에 앉아서 두근대는 마음으로 답장을 썼다. 이렇게 시작한 이들의 서신 교환은 1년4개월 동안 이어졌다.

샐린저의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부터 받는 편지가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는 이야기를 메이나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제리 샐린저에게서 내가 본 것―이것은 내게 있어서 그의 문학적 명성보다도 훨씬 중요했다―은 나 자신의 참된 모습을 숨김없이 보여줄 수 있는 상대가 이 행성 위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었다. 나를 알아보고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처럼 끌어안아 주는 벗을 만난 기쁨과 안도감을, 나와 키스나 섹스를 하고 싶어 하는 남자의 욕망 따위에 비교할 수 있을까?’

아낌없는 격려를 전하는 샐린저에게 메이나드는 ‘당신은 나를 과대평가하고 있습니다’라고 써 보냈고, 샐린저는 ‘당신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멋진 인생을 창조할 여자이고, 세상을 움직일 여자’라는 답을 보냈다.

샐린저는 어느 주말, 뉴햄프셔주에 있는 자신의 은둔처로 메이나드를 초대했고 얼마 뒤 이들은 동거생활에 들어갔다. 메이나드는 학교도 버렸다.

‘나는 그의 팔에 안겼다. 그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정말 기다리는 것은 영원과도 같아.’

메이나드에게 샐린저는 종교이며 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35세라는 나이차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완전한 행복을 만끽할 수는 없었다. 삐걱대며 유지되어 왔던 생활은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샐린저의 말로 막을 내렸다.

1998년 출간 당시 저자는 유명작가와의 ‘달콤하고 씁쓸한’ 연애담을 시시콜콜 털어놓았다는 이유로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샐린저와의 동거생활이 솔직하고 참담한 자기고백의 중심에 있기는 하지만 메이나드가 털어 놓는 삶과의 치열한 전투담에는 세상과 화해하는 법이 깃들어 있어 ‘속됨’을 넘어선다. 원제 ‘At Home in the World’.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