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제임스 딘 불멸의 자이언트'

  • 입력 2003년 5월 16일 17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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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딘 불멸의 자이언트/데이비드 달튼 지음 윤철희 옮김/639쪽 1만8000원 미다스북스

어떤 이들은 죽은 자의 무덤을 파헤쳐 그를 부활시키려 한다. 다시 그를 살려내 기억의 한가운데로 불러온다. 죽은 자가 무덤 안에서 산 자에게 끝없이 타전을 보내왔기 때문일까. 아니 그는 죽었기에 오히려 망각 속에서 깨어나 불멸의 삶을 사는지도 모른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불멸에 대한 욕망을 지닌다.

사라진 인물을 신화화하는 것은 현대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화폐에 새겨진 위인들은 교환 시스템의 상징이 됨으로써 지배체제의 권위를 정당화한다. 이러한 공적 기호와 다르게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스가 새겨진 티셔츠도 있다. 이것은 특정한 개인문화적 기호를 드러낸다. 정신적 자유와 영혼을 원하는 자들은 간혹 그들의 숭배자를 죽은 자에게서 찾는다. 특히 열정적 청춘의 정점에서 멈춰버린 자들은 곧 우상이 된다. 이를테면 존 F 케네디와 마릴린 먼로, 기형도와 전태일, 김광석과 유재하. 생의 절정에서 죽어버린 자들은 젊은 신이 되어 서점에 광고에 텔레비전에 등장한다. 길거리는 이러한 죽은 망령들로 가득하다. 우리 시대는 그들의 사상과 노래와 몸짓, 이미지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 책은 제임스 딘에 대한 단순한 신화화 평전이 아니다. 저자는 1950년대의 미국과 그 속에 살았던 고독하고 몽상적인 한 청년을 추적한다. 제임스 딘은 ‘낡은 것과 새로운 것, 낭만주의와 청교도주의, 영적 유토피아를 향한 꿈과 물질적인 엘도라도’를 향한 아메리카 드림의 분열적 요소를 함축한다. 아홉살 때 어머니를 잃은 예민한 소년은 고아나 다름없이 독실한 퀘이커교도인 고모부 집으로 옮겨오고 다시 작은 농촌에서 도시로 나간다. 그것은 신세계를 향해 가는 미국의 고된 여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제임스 딘은 청년기의 격렬한 열정과 냉소, 허무와 저항, 환상과 현실을 체현하는 역사적 화석이 된다. ‘이유 없는 반항’은 유년에서 성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심리적 충돌과 저항을, ‘에덴의 동쪽’은 청교도적 세계관과 가족주의에 대한 반감을, ‘자이언트’는 서부 개척의 질주와 모험을 드러낸다.

저자는 절제되면서도 풍부한 은유적 문체로 제임스 딘의 그림자를 추적한다. 80여종의 사진과 많은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한 생생한 복원.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 읽기의 쾌감은 제임스 딘이라는 한 인물을 통해 우리 삶을 인식해 보려는 인문학적 철학적 사유를 순간순간 보여주는 통찰에 있다.

제임스 딘은 새로운 세기에 헌신적인 숭배자들에 의해 철제 필름통에서 종이책으로 부활한다. 현대인들이 그를 통해 그들의 육신을 찢고 새롭게 부활하려 하기 때문이다. 변화와 변신만이 현대인의 정체성이 될 때 그들은 딘을 통해 변화와 고통의 정체성을 만끽해 보고자 한다. 우리의 젊은 신은 두려움 없는 저항으로 삶을 파괴하고 창조했다. 이것이 그가 살아 돌아온 이유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문학평론가 yhkim@ptuniv.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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