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동양철학과 한의학'…'氣'란 무엇인가

  • 입력 2003년 5월 9일 17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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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과 한의학/김교빈 박석준 외 지음/325쪽 1만8000원 아카넷

현대 학문체계에서 동양철학과 한의학은 각각 독립된 분과학문으로 구분되지만 이 두 학문은 근대 이전까지는 사실상 같은 사유체계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100여년 사이에 서구 중심의 근대화 물결에 휩쓸려 서구 학문의 틀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동양철학은 인문학에 편입되고 한의학은 자연과학에 편입되어 다른 길을 걸어왔다.

수세에 몰린 두 학문은 서양철학이나 서양의학의 기준에 비춰볼 때 ‘비과학적’이라거나 ‘비합리적’이라는 비판을 견뎌내기 위해 서양학문의 기준에 자신을 맞춰 가며 자신들이 가진 많은 장점들을 스스로 폄하해 왔다. 다행히도 20세기 후반부터 서구적 학문의 패러다임이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깨달으면서 동양의 두 학문은 자신의 본모습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이 책은 동양학의 핵심 개념인 ‘기(氣)’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온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철학연구분과의 소장학자들을 중심으로 한의학, 동양철학, 과학철학 연구자들이 모여 공부해 온 성과를 모은 것이다. 연구자들은 분과학문으로 나뉘기 전에 하나의 틀 안에 있었던 두 학문의 강점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며 다양한 논지들을 제기하고 있다.

박석준 소장(동의과학연구소·생명공학)은 ‘한의학에 적용된 음양오행론의 특징’에서 “오행 이론은 음양 이론보다 훨씬 더 격렬한 비판에 부딪혀 왔지만, 한의학에 적용된 음양오행에서는 그 형성의 문제만이 아니라 실제 임상에서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한의학은 사변과학이 아니라 실천과학이기 때문이다. 박 소장은 “일단은 기존의 오행 체계를 인정하면서 엄밀한 검토를 거쳐야 한의학 이론의 정확성이 확보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김교빈 교수(호서대·동양철학)는 ‘기에 대한 철학적 이해’에서 “철학은 기를 추상화시켜 가고 의학은 경험과 치료 차원으로 구체화시켜 간 결과, 오늘날의 철학은 구체적 토대를 잃었고 의학은 이론체계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양자의 결합을 통해 다시 토대와 이론이 접맥된 기의 본 모습을 되살려내고 여기에 새롭게 현대성까지 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최종덕 교수(상지대·과학철학)는 ‘동의학 계통론과 인체경락의 과학적 근거가능성’에서 “기능(작용)과 원리를 구분해서 보는 서구적 방식이 혈(穴)이나 심(心)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한다”고 말했다. 심장과 피를 구분해서는 혈을 이해할 수 없고 뇌와 마음을 구분해서는 심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작용과 원리의 일원성은 기철학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하며 “정(精) 기(氣) 신(神)을 하나로 보는 방식으로 물질에 대한 전면적인 사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직 문제제기에 그친 부분도 적지 않지만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이의 학제간 연구에서 모범적인 성과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과정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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