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뇌는 스크린이다:들뢰즈와 영화 철학'

  • 입력 2003년 5월 9일 17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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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스크린이다:들뢰즈와 영화 철학/그레고리 플렉스먼 엮음 박성수 옮김/544쪽 2만5000원 이소출판사

먼저 플라톤의 영화관에 들러보자. 그는 평생 영화만 보고 사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컴컴한 동굴극장의 좌석에 묶인 채 화면(동굴 벽면)에 비치는 그림자상을 보고 있다. 이들 뒤쪽에 있는 영사기는 사람 동물 등의 모양을 비춰준다. 이들 영화애호가는 그들 앞의 화면에 비치는 ‘그림자’들만 보면서 그것이 사물의 ‘참된’ 모습이라고 여긴다. 그들에게 그림자는 곧 사물이다.

이런 동굴극장은 감각을 숭배하고 이미지를 현실로 착각하는 ‘이미지족’의 감각적 세계를 비유한 것이다. 이런 영화관에는 사물의 참된 모습을 가리는 허상만 있을 뿐이다. 플라톤은 우리가 이미지에서 실제 사물로, 나아가 변화에 휩쓸리는 감각적 사물 너머의 불변적인 것으로 눈을 돌릴 때에만 보편적 진리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현대 프랑스 철학자인 질 들뢰즈는 플라톤의 이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영화관에 드나들면서 새로운 철학을 구상한다. 이미지들이 운동하는 무대는 고정된 동일성(본질)을 벗어날 수 있는 차이와 사건의 철학을 위한 새로운 공간이 된다. 이미지들은 개념적 사고가 파악할 수 없는 생성과 창조를 산출하고 개념적 사고에 충격을 주며 이미지들 앞에 있는 우리가 ‘개념 없이’ 구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한다. 이런 이미지로 사고하기 위한 ‘이미지의 존재론’은 영화가 생산하는 이미지를 ‘운동이미지’와 ‘시간이미지’의 틀로 제시한다.

이 책은 들뢰즈의 영화 철학에 관한 다양한 논의를 모은 것이다. 필자들의 견해와 논점은 다채롭지만 대체로 들뢰즈의 기획에 동참하면서 그 가능성에 주목한다.

1부에서는 이미지의 존재론과 관련해 들뢰즈의 틀이 어떤 이론적 배경과 발전 과정을 거쳤는지, 기존 표상의 틀을 어떻게 재해석하는지 등을 살피면서 전통적인 영화기법을 재검토한다.

2부에서는 이미지들을 새롭게 배치하기 위해 이미지들을 내러티브(서사)와 행위에 종속시키는 방식에 맞설 수 있는 길을 찾는다. 이미지와 사운드의 어긋남, 말할 수 있는 것과 보여줄 수 있는 것의 불일치,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상황과 그에 따른 행동의 틀에서 벗어난 순수하게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이미지의 작용에 주목한다. 3부에서는 이런 ‘이미지로 사고하기’가 기존 질서와 영화 문법을 옹호하는 도덕 및 이데올로기에 맞서서 새로운 ‘영화적 윤리’를 마련할 수 있는지 살핀다. 이것은 주체와 사회를 하나의 전체로 조직하는 억압적인 논리에 맞서서 창조적 카오스, 순수한 생성의 능력에 주목한다.

과연 이미지의 자유로운 흐름과 창조적 잠재성의 능력에 주목할 때 이미지들의 카오스에서 새로운 생성을 낳을 ‘카오스모스’를 구성할 수 있을까. 새로운 운동-시간이미지는 기존 사회라는 ‘답’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사회를 이끌 ‘질문’을 긍정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양운덕 고려대 강사·서양철학 yw081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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