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상영/글로벌시대 '우물속 한국'

  • 입력 2003년 4월 22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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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조차 생소한 외국 펀드가 SK㈜의 최대주주로 부상한 지 3주일이 됐다. 하지만 파장은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증폭되고 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외국인의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된 최초의 사례여서 정부와 기업 모두 당황하는 모습이다.

기업 측면에서 볼 때 SK 위기는 자초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SK는 국내 재벌의 최대 문제점인 순환출자가 가장 심한 기업이다. 순환출자로 가공자본을 만들어 취약한 지배구조를 유지해왔다. 적대적 M&A가 허용되지 않던 과거에는 괜찮았지만 M&A시장이 열리면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따라서 재계 스스로 이번 사례를 근거로 출자총액제한제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자기 집을 털린 도둑이 경찰 방범망을 나무라는 격이다. 출자총액제한 제도는 무분별한 순환출자를 막기 위해 도입된 정책이다.

정부는 SK 사례에서 얻어야 할 교훈이 더욱 많다. 무엇보다도 국내시장만을 염두에 두고 도입한 정책이 글로벌시대에도 유효한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출자총액제한제와 기간산업에 대한 외국인지분 제한 등의 정책이 사실상 무력화될 수 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국제 금융시장을 떠도는 펀드들은 SK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조세회피지역(Tax Heaven)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자금을 굴리는 것이 보통이다. 실제로 누가 돈을 댔는지에 대해서는 비밀에 부친다. 현재 시장에서는 SK㈜의 최대주주가 된 소버린자산운용의 진짜 전주(錢主)에 대해 갖가지 소문이 돌고 있지만 실상은 알 수 없다. 외국펀드는 국내 금융실명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론적으로는 국내자본이 해외로 나갔다가 페이퍼컴퍼니를 경유해 외국자본인 것처럼 행세하며 국내로 들어올 수 있다. 이런 수법은 업계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출자총액제한제 등 각종 국내법을 빠져나갈 수 있다. 자본이동을 통제하던 시대에 만들어진 정책이 유효성을 상실한 것이다.

기간산업에 대한 외국인지분 제한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이동통신망사업은 법으로 지정된 국가 기간산업이다. 하지만 SK텔레콤의 최대주주는 SK㈜이고 SK㈜의 최대주주는 소버린이다. 비록 소버린측이 SK텔레콤 경영에 관심이 없다고 밝혔지만 형식상으로는 얼마든지 경영에 간여할 수 있다. 당초 법 취지가 무력화된 것이다.

글로벌시대의 경제정책은 국내시장뿐 아니라 국제자본의 흐름까지 파악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기간산업에 대한 외국인지분 제한이나 출자총액제한제를 유지하려면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들어온 외국 펀드에 대해 주주 구성현황을 제출토록 해 실제 돈 주인을 파악해야 한다. 정책은 필요한데 외국펀드의 정체를 밝혀낼 수 없다면 국내자본과 형평을 맞추기 위한 방안이라도 강구해야 한다. 출자총액제한제의 경우 재벌은 순환출자 해소 약속과 일정을 제시하고 정부는 적대적 M&A에 대한 경영권 방어수단을 강화해주는 방향으로 손질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정부와 기업 모두 SK 사례가 남긴 시사점을 반영해야 한다. 삼성전자나 포항제철이 SK와 비슷한 일을 당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영국 파운드화도 소로스의 국제 헤지펀드 공격에 무릎 꿇는 시대이다.

김상영 논설위원 you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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