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日 근대 서구사상 수용과정 비교 국제학술회의

  • 입력 2003년 3월 26일 19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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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3국의 근대화 초기 서구정치사상 수용 과정을 비교하는 국제학술대회가 28, 29일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회장 이택휘·李澤徽 한국교육대총장) 주관으로 이화여대 국제교육관에서 열린다.

19세기 근대국가 수립과 제국주의적 수탈 과정에 대한 연구는 많지만 동아시아 3국의 서양사상 수용에 관한 사상사적 비교연구는 거의 없는 현실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여서 관심을 끈다. 동아시아 3국의 서양사상 수용 과정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 일국사(一國史) 중심의 시각에서 주로 접근해 서양의 충격에 대한 각국의 이해를 비교하는 연구는 적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일본 및 중국에서 중역(重譯) 형태로 수용된 서양사상의 내용과 성격에 대한 연구가 절실한 실정이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중국의 옌푸(嚴復)와 량치차오(梁啓超), 일본의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와 나카에 조민(中江兆民), 한국의 윤치호(尹致昊) 등 근대화 초기 대표적 사상가들의 서구사상 수용 과정과 그 결과가 논의된다.

요네하라 겐(米原謙) 오사카대 교수는 ‘일본에서의 문명개화론-후쿠자와 유키치와 나카에 조민을 중심으로’라는 발표문에서 일본의 대표적 두 개화사상가가 걸어간 대조적인 길을 설명한다.

그는 미리 배포된 논문에서 “현대 미국정치이론의 용어를 빌리자면 자유주의자로서 출발한 후쿠자와는 공동체론자로서의 측면이 강화된 반면 나카에는 공동체론자로 출발했지만 후에 독특한 자유개념을 전개해 자유주의자의 면모를 지니게 됐다”고 분석했다.

두 사상가는 일본에서 1870년대 말까지 융성한 자유민권운동을 접하고 난 뒤 상이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 ‘동양의 루소’라고 불리는 나카에는 1881년 ‘동양자유신문(東洋自由新聞)’에 주필격으로 참가해 창간호에 ‘리버럴 모럴(liberal moral)’에 관한 유명한 자유주의적 논문을 남긴 반면 후쿠자와는 이 무렵 기독교의 침투에 의해 일본인의 정신이 거세될 것을 우려해 황통신화(皇統神話)를 기축으로 한 국체론(國體論) 구축의 길을 걷는다.

후웨이시(胡偉希) 칭화대 교수는 ‘옌푸와 량치차오로부터 보는 중국 근현대 지식인의 국가관념’이란 글에서 “옌푸와 량치차오가 중국의 구망도존(救亡圖存)이라는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서구의 고전적 국가학설을 오독하는 결과를 빚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들은 고전적 서구사상가들과는 달리 개인과 국가의 관계를 이익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도덕에 기초한 것으로 봤고 국가운영의 이상적인 방식을 분권(分權)이 아니라 집권(集權)의 시각에서 파악했다”며 “그 결과 국가를 하나의 유기체로 생각하는 독일 정치학자 요한 카스퍼 블룬칠리 유의 유기국가관(有機國家觀)에 경도됐다”고 설명했다.

정용화(鄭容和) 연세대 교수는 ‘조선에서의 문명개화론-윤치호를 중심으로’란 글에서 “윤치호는 서구 중심부의 문명이라는 신기루를 좇다가 어느덧 주체를 상실해 버린 주변부 지식인의 허구의식을 보여준 전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윤치호를 지배한 문명개화론의 배경에는 ‘사회진화론’이 자리잡고 있었고 이는 ‘강자=우월’ ‘약자=열등’의 도식에서 결국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했다”며 “이러한 논리를 약자가 내면화할 경우 강자의 지배에 대한 저항의 명분을 찾을 수 없고 자기의 문화적 열등을 탓하면서 현실순응의 태도를 낳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전복희(田福姬) 한국항공대 교수는 ‘한말기의 계몽사상-애국계몽기의 경우’라는 글에서 “당시 계몽가들은 주로 중국과 일본 지식인의 저서를 통해 서구 근대사상을 수용했는데 특히 중국의 량치차오, 일본의 후쿠자와 등의 글이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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